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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공부력

[이제는 ‘공부력’이다]전문가 ‘공부력’ 기고 (동아일보 2015-04-23 03:39:25)

[이제는 ‘공부력’이다]전문가 ‘공부력’ 기고]

엄마의 입시 귀동냥 바이블로 여기는 세상… 자녀 신뢰가 먼저다

 

며칠 전 어느 중학교 인근 카페에서 본 풍경이다. 엄마 다섯 명이 모여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다. “외고 입시 자기소개서에 이런 거 쓰면 안 돼요. 감점 당한다니까.” “학교 뒤 A학원은 수학 강사 평이 안 좋아요. B학원 강사가 KAIST 출신이라 더 나아요.”

얼핏 들어도 전문가들이나 알 법한 정보들이었다.

대화 열기가 고조될 쯤, 카페 문이 열리고 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엄마에게 쏠렸다. 이후 대화 내용으로 이유를 알았다. 딸이 전교 1등이었다.

학부모들을 상담해 보면 엄마들의 세계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자녀가 전교 1등이거나 서울대에 진학한 엄마들이다. 다음은 ‘1등의 엄마’는 아니지만 입시정보에 정통하고 주변에 이를 나눠주는 엄마다. 나머지는 평범한 대다수의 엄마다.

주목해야 할 부류는 바로 세 번째 엄마들이다. 이들은 늘 입시정보에 목마르고, 다른 엄마에게 듣는 정보가 자녀에게 꼭 필요한 ‘바이블’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카페, 친목회, 어머니회에서 들은 입시정보를 여과 없이 자녀에게 쏟아 붓는다. 영문도 모르는 자녀는 고스란히 그 압력을 다 받아내야 한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정보들은 장기적으로 ‘약’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고교와 대학이 있다. 입시는 매년 바뀌고 입시전략과 공부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전문가도 헷갈린다.

학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내 아이를 잘 아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엄마들은 ‘귀동냥’을 더 중시한다.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소화제, 혈압약, 십전대보탕까지 먹이는 것과 비슷하다.

공부는 ‘공부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결과가 오래 이어진다. 공부력은 학생 개인의 능력과 주위 환경을 통해 형성되는 일종의 ‘기본 근육’이다. 꾸준히 자녀를 신뢰하고, 혼자 공부를 해 나갈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고, 환경을 조성해야 생긴다. 자녀와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어떤 부분에 자녀가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방식을 좋아하는지 이해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공부도 오래간다.

 

 

 

[이제는 ‘공부력’이다]<3>아이에게 주는 스트레스, 공부력 낮춘다<끝>

부모가 정서적 안정감 주면 ‘공부 근력’ 탄탄

 

 

《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 대처능력’이다. 스트레스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공부력’의 핵심 요소다. 진학사 청소년교육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많은 부분이 부모,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다른 두 엄마와 자녀의 사례를 살펴보자. 둘은 모두 연구소에서 공부력 검사와 상담을 거쳤다. 》




○ 믿고 맡긴 종현이 vs 일일이 챙겨준 유민이

“종현 엄마, 이번에 큰아들 대학 보냈다며? 고생했네, 이제 둘째만 남았네!”

이정은(가명·49) 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한다. 아들이 스스로 대학에 갔지 자신이 보낸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학교나 학원 생활은 종현이에게 맡기는 편이었고,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거나 의견을 구해올 때면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편이었다. 종현이는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 나갔고, 스포츠 마케터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서울 한 대학의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올해 중3인 둘째 성현이는 “제빵사가 되고 싶다”며 요리사를 장래 희망으로 정했다. 성현이는 형보다 공부를 잘해서 이 씨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성현이는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를 목표로 특성화고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 엄마들은 “공부 잘하는 애를 인문계 보내야지 무슨 요리냐”며 난리지만 이 씨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무심한 듯한 이 씨와는 달리 김정숙(가명·46) 씨는 딸 교육에 열심이다. 김 씨의 딸 유민이는 올해 중3. 모녀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김 씨는 며칠 전 딸의 담임교사를 만나 하소연했다. “선생님, 딱 대놓고 ‘넌 지금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을 해주세요. 좋게 얘기하면 얘는 이해를 못 해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 공부를 하죠….” 그 옆에서 유민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김 씨는 “성공하라고 뒷바라지하는 엄마 마음을 딸이 모른다”며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성적이 오르기는커녕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걱정했다. 딸이 불성실하다고 생각하는 김 씨는 최근 학습 강도가 센 학원에 보내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상담 결과 유민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더 잘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자 지치기 시작했다. 유민이는 “엄마한테 떠밀려 어학연수를 갔는데 너무 외롭고 친구도 없이 지내다 왔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잔소리만 했다”고 털어놨다.


○ 부모의 태도가 자녀의 능력을 결정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할 때 자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적이나 진학 결과를 부모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일 때 스트레스가 극대화된다는 의미다. 이런 부모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는 부모의 스트레스를 그대로 닮아가고, 부모와 자녀의 사이에는 상처가 깊어진다. 자녀의 스트레스 대처능력은 자연히 약해진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은 공부하듯 암기해서 생기지 않는다. 유민이 사례처럼 부모의 불안 상태가 지속되면 자녀 역시 공부를 이어나가기 힘들다. 부모가 제3자 앞에서 감정적인 언어를 그대로 표출하고 아이를 질타하면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면 종현이 엄마처럼 부모가 자녀를 믿고 정서적인 인정감을 부여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의 동기를 찾는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란 토대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생겨도 잘 이겨낸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무 몰입해서 함께 흔들리는 것보다는, 곁에서 조금 떨어져 지켜보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교육’ 이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부모가 자신의 의미를 찾고 삶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녀에게 몰두해야 자녀가 잘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