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과학자] 딱 한번의 기회만 허락받은 사람...최석원 다목적실용위성3A호 사업단장
카자흐스탄을 지척에 둔 러시아 남부의 국경 도시 올렌버그의 야스니 발사장은 3월 하순에도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들판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옛 소련 양식의 아파트들은 창문에 불이 꺼진 채 적막했다. 미소 냉전 시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기지로 활용되는 비밀스런 이곳이 이제는 미국의 혈맹(血盟)을 자처하는 한국의 위성 발사장으로 사용된다는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최석원(53)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다목적실용위성3A호사업단장을 그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기지 한복판에서 만났다.
최 단장은 1992년 우리나라 위성사업의 초창기부터 항우연의 전신인 항공우주연구소 우주시험그룹에서, 위성체 열제어와 환경시험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별위성과 과학위성, 다목적실용위성 1호, 2호 등 국내에서 개발되는 위성의 우주환경 시험에 참여한 위성개발 분야의 산증인이다.
한 눈보기에도 실험실의 연구자처럼 보이는 그에겐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한반도의 위성사진을 언제든 확보하기 위해 1994년 첫 사업을 시작한 다목적실용위성 사업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20년간의 한국 위성개발사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안경을 쓰고 비쩍 마른, 한눈에 봐서는 ‘약골(弱骨)체력’ 같은 그에게 한층 더 무거워 보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우리 연구원들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구원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성공 여부는 하늘의 뜻에 달렸습니다.”
아리랑3A호는 지난달 26일 새벽 성공적으로 우주로 향했다. 최 단장은 아리랑3A호가 발사에 성공한 직후 “한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기술진의 정성과 하늘의 뜻이 맞아 결실을 본 결과”라고 말했다. 위성 발사 하루 전과 발사 당일 누구보다 말을 아끼던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밟았다.
-아리랑3A호가 발사에 성공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위성이 우주궤도에 안착해 지상과 교신에 성공한 것만도 9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100% 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목적한 대로 높은 품질의 위성 영상을 내려 보내 야 진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성이 궤도를 돌고 있지만 당초 목적한 품질의 영상을 찍지 못하면 안 된다. 앞으로 6개월이 중요하다. 가급적 빨리 국민에게 더 정밀한 위성 영상을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위성 발사를 경험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앞두고 어떤 심경이었나.
“아리랑2호부터 위성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발사의 성공 여부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공학을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위성의 성공을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발사 직전까지 수천개 수만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꼼꼼히 확인했다. 그래도 실패하는 게 우주 발사다. ”
-나로호에 실린 과학기술위성을 제외하고 한국의 위성 발사는 지금까지 별로 실패한 일이 없어서 어느 정도 마음을 놔도 좋지 않나.
“그래서 더 걱정을 많이 했다. 위성은 수 만개 이상의 부품들과 소프트웨어로 태어난다.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다. 그래서 더 알기가 어렵다. 오히려 발사 성공률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연구원들끼리 ‘이번만 무사히’라는 얘기도 한다. 이렇게 성공만 하다가 언젠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사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만든 위성이 무사히 우주궤도에 올라갈 수 있을까란 걱정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리랑3A호가 성공적으로 우주로 올라가기까지 여러 사람의 숨은 정성과 노력을 보탰다. 겨울이면 수미터씩 눈이 쌓이는 야스니 발사장의 긴긴 겨울을 견딘 연구원들도 여럿이다.
-지난해 발사가 연기되면서 위성을 남겨두고 왔는데 부담은 없었나.
“그래서 연구원 세 명을 남겨두고 왔다. 물론 일부 교대는 했지만 세 사람씩 남아 위성이 발사 때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매일 24시간 꼼꼼히 확인했다. 야스니 발사장 주변에는 변변한 가게나 시설이 없다 보니 이곳의 군인들과 축구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겨울을 지냈다.”
인공위성이 성공하려면 수많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벽이 지구 중력과의 싸움이다. 위성이 떨어지지 않고 지구 주변을 돌려면 ‘지구 중력의 벽’을 넘어야 한다. 물리학에서 ‘탈출 속도’라는 개념인데, 초속 7.9㎞에 이른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실수가 위성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벽을 성공적으로 넘느냐는 우주기술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하다. 단 한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셈이다.
―다목적실용위성을 발사한 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아리랑3A호의 특징은 뭔가.
“아리랑3A호는 한국의 개발사에서 따로 동떨어진 기술이 아니다.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의 또 다른 결정체이다. 무엇보다 전자 광학카메라 기술이 한 번 더 진화했다. 아리랑3호가 가로세로 70㎝크기의 물체를 한점으로 인식했다면 이보다 더 작은 물체인 가로세로 55㎝물체를 인식한다. 아리랑3A호에는 또 땅 위의 건물이나 물체에서 내뿜는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IR) 감지 센서가 달렸다. 컴컴한 밤에도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볼 수 있다. 다목적실용위성 시리즈 가운데 처음이다.”
-적외선 감지 센서를 달았다는데 무게를 많이 두는 이유는 뭔가.
“적외선 센서는 해양기상관측 위성인 천리안 위성과 과학기술위성에도 장착한 일이 있다. 하지만 아리랑3A호가 달린 센서는 민간에서 사용되는 적외선 센서 가운데 가장 정밀하다. 다른 위성은 수십~수백m 단위를 인식하지만 아리랑3A호는 5.5m를 한 점으로 인식한다. 그만큼 좁은 면적에서 일어나는 열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유럽에도 비슷한 위성이 있지만 아리랑3A호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기술의 진보를 이뤘나.
“아리랑3A호는 2012년 발사된 아리랑3호와 기본적으로 플랫폼이 같다. 하지만 위성에 들어간 컴퓨터가 아리랑3호보다 30%가량 앞선다. 아리랑3호보다 더 정밀한 영상을 더 빠른 속도로 날면서 땅 위를 촬영하기 때문에 영상 처리 능력을 향상시켰다. 디지털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생각하면 된다. 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셔터 속도가 느린 카메라로 빨리 움직이는 물체를 찍으면 화면이 뭉개져 보인다. 안에 들어간 컴퓨터칩이 화면을 서둘러 처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컴퓨터 칩의 처리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센서가 포착한 지상 사진을 금방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
-이번 위성 발사가 갖는 의의가 있다면 무엇인가?
“땅 위를 좀 더 촘촘히 지켜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꾸준히 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땅 위를 관측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적외선 센서를 달면서 밤에 땅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 또 아리랑3A호는 앞서 발사된 아리랑3호와 20분 간격으로 한반도 상공을 지난다. 아리랑2호가 오전 10부터 오후 12시 사이, 아리랑 3호와 3A호가 오후 12시부터 2시 사이 운영되고, 레이더로 지상을 관측하는 아리랑 5호가 이른 아침과 해가 지기 전 한반도를 관측하게 되면서 하루 관측 횟수가 2회나 늘었다.”
-사실상 군사위성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아리랑3A호는 그야말로 다목적 위성이다. 위성 정보를 요구하는 수요처나 기업은 점점 늘고 있다. 군사위성 논란 자체가 한국의 위성 개발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사위성으로 지목되는 순간 앞으로 모든 나라의 위성 발사와 부품 조달은 어려워진다. 다른 나라도 그렇듯 한국의 위성을 군사용이라고 지목하면 누가 발사해줄 건가.”
한국의 인공위성 개발사업은 최근 전환점을 맞고 있다. 국내 위성 개발사업은 그간 정부가 거의 주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위성개발 사업을 민간 주도로 바꾸기 위해 2020년까지 2240억원을 투자해 민간과 공동으로 지상 관측용 차세대 중형위성을 2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한국은 상업위성이 발달한 나라보다 너무 지나치게 비싼 위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리랑3A호만 해도 2359억원이 들어갔다.
“기술 확보 측면에서, 또 위성 영상을 사용하는 수요처가 요구한 수준에 맞추다 보니 개발비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중형위성 개발사업이 나왔다. 아리랑3A호도 중형위성 사업으로 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AP우주항공과 같은 국내 기업들의 참여를 늘렸고, 부족하나마 가급적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을 이전하려고 애썼다. 지금 이 발사장에도 위성을 제작한 기업의 엔지니어들이 항우연 연구원들과 함께 발사 순간을 기다린다.”
-아리랑3A호는 얼마나 국산화한 건가.
“국산화가 몇%니 하는 이야기는 산업적으로 의미가 없다. 부품을 모두 국내에서 만들어야 완전 국산화했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리랑3A호도 광학 카메라와 적외선 감지 센서는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하지만 사용된 부품은 하니웰과 같은 외국 기업에서 사다 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리랑3A호의 국산화율이 떨어졌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나로호가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앞서 두 번의 실패 과정에서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러시아의 발사체 수준은 미국보다 앞서 있다. 이 정도 수준의 발사 성공률을 보이는 나라는 드물다. 물론 초기에는 실패도 했지만, 많이 발사했고 그만큼 성공률도 올라갔다. 지금도 상업위성 발사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러시아가 상당 부문 도맡아 하는 것만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아리랑3A호는 지난해 11월 27일 야스니 발사장으로 옮겨졌다. 당초 12월 24일 발사가 예정됐지만, 수차례 발사가 연기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크림반도 병합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엉뚱하게 불똥이 아리랑3A호로 튀었다. 아리랑3A호를 싣고 우주로 향할 발사체인 드네프르(Dnepr)는 러시아가 운영하고 있고, 이를 제작한 곳은 우크라이나였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위성 발사가 계속 연기된 일이었다. 2009년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 지난해 말 위성과 함께 발사장에 왔을 때만 해도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꼭 쏘겠다’는 마음으로 왔었다.”
-발사 용역을 맡은 코스모트라스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가급적 발사체 자체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제작에 큰 비용을 할애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이 있는 회사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에 위성 발사용역을 해주겠다는 회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원래는 코스모트라스도 유럽과 일본, 러시아의 다른 회사와 ‘4파전’을 치렀다. 최종적으로 러시아 기업끼리 맞붙었는데 이 중 이 회사가 최종 낙찰된 것이다.”
-발사 용역을 맡은 코스모트라스의 기술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저궤도 분야에선 코스모트라스가 위성 발사 사업에 사용하는 드네프르만큼 고객이 원하는 위치에 위성을 정확히 올리는 발사체는 없다고 본다. 아리랑3A호도 텔레메트리(원격 수신 정보)를 살펴보니 거의 정확한 시간과 위치에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고작 수백 미터 정도의 오차만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에 끌려 다녔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당초 우리가 발사체 기술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한국이 발사체를 보유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별도의 문제다. 러시아의 드네프르만 아리랑3A호를 포함해 지금까지 22차례나 전 세계 위성을 쐈다. 우주개발 경쟁국인 미국조차 위성 발사 용역을 맡기고 있다. 싼 가격 경쟁력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한 것이다.”
-앞으로도 러시아와 위성과 발사체 분야에서 협력을 계속할 것인가.
“현재로선 새로운 다목적실용위성의 발사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본다.”
최 단장은 발사 성공 직후 열린 축하연에서 “3월 초부터 발사까지 준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없었는데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나라의 엔지니어들이 마음을 합쳐 발사에 성공했다”며 해외 관련회사 관계자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이번 사업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데 숨은 일등공신은 누구인가.
“발사와 관련된 관련자가 모두 애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 3월11일부터 다시 발사 준비를 시작했는데 우리 연구원들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엔지니어들, 야스니 발사장 관계자 모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짧은 시간인데도 준비를 잘한 것 같다.”
발사를 준비한 모든 이들의 정성이 하늘에 통한 걸까. 아리랑3A호는 발사에 성공한 직후 이틀 만에 첫 영상을 촬영했다. 지금까지 발사된 다목적실용위성 가운데 가장 빨리 촬영에 성공했다.
최석원 단장은
1962년 출생
1985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졸업
1987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석사
1992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박사
1992년~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1992년~1995 미국 록히드마틴사에서 한국통신 무궁화위성 열제어계 기술전수 훈련
2000년 국무총리상
2006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시험그룹장
2011년~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다목적실용위성3A호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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