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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

명사들 세브란스병원 찾는 이유 (중앙일보 2015.03.14 00:35)

 명사들 세브란스병원 찾는 이유

외교사절은 … 미국인이 세운 인연으로
내국인들은 … 대기업과 무관, 부담 덜해

 

“세브란스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5일 오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80바늘을 꿰매야 하는 응급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피습당한 그를 태운 경찰 순찰차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있는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지혈이 끝나자 리퍼트 대사는 대사관 주치의(미국인 가정의학 전문의)와 상의해 이런 결정을 했다. 강북삼성병원 앞에 몰려 있던 수십 명의 취재진은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동했다. 리퍼트 대사가 10일 퇴원하기까지 세브란스병원은 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많은 사람의 우려를 씻어내며 리퍼트 대사는 환자복을 벗고 양복 차림으로 병원을 나섰다.

 이 사건의 주연은 ‘동네 아저씨’ 리퍼트 대사였다. ‘함께 갑시다’ ‘괜찮아요’ 등의 한국어로 드라마를 선사했다. 그 무대는 세브란스병원이었다. 공교롭게도 세브란스는 리퍼트 대사·박근혜 대통령 피습 사건을 연상케 하는 다음과 같은 일로 인해 탄생했다.

 

1884년 12월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켜 청나라와 가까운 수구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수구파 우두머리인 민영익도 자객의 칼을 맞았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에게 한방 치료가 소용이 없자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H N Allen)이 수십 곳을 꿰매는 대수술을 했다. 민영익은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때 생겨난 서양 의술에 대한 신뢰로 고종의 주치의가 된 알렌은 병원 설립을 건의했고, 이듬해 4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자 세브란스의 뿌리인 제중원이 만들어졌다. 그 후 130년간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켜본 세브란스는 최근까지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김옥경 할머니 연명치료 중단 등 굵직한 사건의 배경이 됐다.

 이처럼 세브란스가 주목받는 이유에는 태생과 연관된 것들이 있다. 알렌이 세운 제중원에 선교사 애비슨(O R Avison)이 의학교를 만들었고 사업가 세브란스(L H Severance)가 병원 설립 기금을 기증하면서 1904년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탄생했다. 병원 설립에 관여한 3명 모두 미국인이다. 세브란스 병동 한가운데 있는 제중원 건물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미 8군이 다시 지어줬다.

 미국과의 오랜 인연은 주요 외교 사절들이 세브란스를 찾는 주요인이 됐다. 현재 미국 대사관의 공식 지정 병원이 세브란스다. 리퍼트 대사의 부인은 지난 1월 아들 세준(Sejun)을 이곳에서 낳았다.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은 “미국 대사 집무실에 알렌 사진이 걸려 있다. 리퍼트 대사 피습 직후 대사관 주치의가 먼저 세브란스에 전화를 걸어 치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2010년 방한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세브란스에 입원했다. 출국을 앞두고 호텔에 있던 키신저 전 장관이 복통을 일으키자 미국 대사관 주치의가 세브란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했다. 병원은 곧바로 구급차를 보냈고, 키신저 전 장관은 하루 동안 치료받은 뒤 다음 목적지인 중국으로 떠났다.

 지리적 요인도 크다. 정치·행정 중심지인 종로와 광화문, 청와대 부근에선 이동 거리가 짧은 세브란스와 서울대병원 중 한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일이 2006년 5월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피습이다. 신촌에서 선거 유세를 펼치다 상처를 입은 박 대통령은 곧바로 세브란스에서 치료를 받았다. 박 대통령과 리퍼트 대사를 모두 진료한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는 “상처 부위와 정도, 진료 병원과 수술 방법까지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동교동), 전두환 전 대통령(연희동),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청운동)도 자택 근처인 세브란스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폐렴으로 이 병원에 입원한 뒤 한 달여간 투병하다 별세했다. 박 전 회장도 2011년 세브란스에서 세상을 떠나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사립 대학교 재단이 운영하는 만큼 ‘명사급’ 환자들이 부담을 덜 느낀다는 분석도 있다. 이진우(정형외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대외협력처장은 “서울대병원은 국립이라서, 아산이나 삼성 등 대기업 재단 병원은 기업과 연관된 곳이라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 색깔이 없는 곳을 찾다 보면 우리 병원이 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가 지낸 VIP 병실은 국내 인사들이 생각보다 많이 찾지 않는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 온 환자가 VIP 병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중에선 언론 노출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관심이 집중되는 VIP 병실보단 상대적으로 조용한 1인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박지원 의원, 김운용 전 IOC위원 등 정·재계 거물들이 보석 또는 형집행정지를 받고 세브란스에 입원하기도 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은 같은 현대가(家)에서 운영하는 서울 아산병원이나 맏사위가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성모병원 대신 세브란스를 택했다. 그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들은 병보석 기간 중이라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한 것으로 추측했다.

[S BOX]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움 준 의사, 그 아들이 박근혜 대통령 치료

세브란스병원은 오랜 역사만큼 대통령들과의 인연도 깊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국내 최초 성형외과 의사인 유재덕 교수가 있다. 미국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해 1961년 세브란스에 자리 잡은 유 교수는 전국을 돌며 무료 언청이 수술을 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이 불러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고 71년 이동용 수술버스를 도입해줬다. 두 사람의 인연은 대를 이어 계속됐다. 2006년 유세 도중 공격을 당해 얼굴에 상처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의 치료에는 유 교수의 아들인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가 탁관철 주임교수와 함께 참여했다. 탁 교수가 수술 직후 출장을 가면서 유대현 교수는 이틀 동안 박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0년 단식투쟁 직후 진료를 맡은 허갑범(내분비내과) 교수와의 인연으로 세브란스를 계속 찾았다. 허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쟁점이 됐던 97년 대선 당시 별 문제 없다는 진단서를 내줘 주목받았다. 허 교수는 이듬해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씨에 의해 세브란스 ‘단골’이 됐다. 갑자기 다리가 저려 걷지 못했던 이씨는 세브란스에서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내 2007년 수술받았다. 다른 병원에서는 확인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이씨는 타 대학병원에 줄곧 다니던 전 전 대통령을 세브란스로 이끌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세브란스에서 발목과 심장 수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