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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

증세 자각땐 이미 암 진행… 50세이후 내시경검사 꼭 받아야 (동아일보 2014-12-15 13:59:08)

증세 자각땐 이미 암 진행… 50세이후 내시경검사 꼭 받아야

[암, 빨리 찾으면 이긴다]<1>발병률 아시아 1위 ‘대장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암을 완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조기 발견. 하지만 조기 진단율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환자는 암이 상당히 진행된 뒤 병원을 찾는다. 특히 대장암 위암 간암 췌장암 등과 같은 소화기 암은 자각증세가 없어 조기 진단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본보는 연세암병원과 함께 소화기 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 암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5회에 걸쳐 기획시리즈로 소개한다. 》

이강영 연세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대장암 환자에게 복강경 수술을 하고 있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 수술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빠르고 합병증 위험도 적다. 연세암병원 제공

 

결장과 직장에 암이 생기는 대장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184개국 대장암 현황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46.9명으로 아시아 1위이자 세계 4위다. 위협적인 병임에도 불구하고 대장암의 증상들을 과민성 대장증후군 정도로 여겨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이 많다.


○ 초기 자각증세 없어…정기검진이 최선

대장암이 발병하면 소화불량, 복통, 잔변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혈변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초기엔 이런 증상마저 없다. 만일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왔다면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남규 연세암병원 대장암센터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자신이 고위험군에 속하면서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꼭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장암의 고위험군은 50세 이상으로 붉은 육류나 육가공품을 즐겨 먹고 비만형 체형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특히 가족 중 대장암 병력이 있거나 유전성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50세 이전에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대장암은 유전적으로 특별한 위험인자가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50세 이후 대장내시경 검사는 필수다.

안타깝게도 초기 발견을 놓친 경우에도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최근 발전된 수술기법과 각종 항암 보조요법으로 많은 중증 대장암 환자들이 완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갑작스럽게 혈변과 복통을 경험해 응급실을 찾은 이영식(가명·67) 씨는 진단 결과 대장암이 간으로까지 퍼진 4기 상태였다. 그는 말기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포기하려 했지만 항암제로 암 크기를 줄이면서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주치의의 말을 믿고 치료에 들어갔다. 아홉 차례에 걸친 표적 항암제 치료를 받은 뒤 10월 초 직장과 간에 있는 암을 동시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암세포를 없앨 수 있었다.

○ 로봇수술, 복강경 수술로 개복 부담 덜어내

대장암 환자들의 부담 중 하나는 ‘개복수술’이다. 배 부위를 절개해 수술을 하는 것에 공포심을 느끼고 수술 이후의 합병증 등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부담을 고려해 로봇수술이나 복강경을 활용한 최소침습수술이 늘고 있다.

현재 연세암병원 대장항문외과에서는 로봇이나 복강경을 이용한 최소침습수술이 활발히 이뤄져 2013년 기준 전체 대장암 수술의 80%를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로봇수술은 회복 기간, 합병증 예방 측면에서 좋은 수술법이다. 이 병원 대장항문외과 민병소 교수가 로봇수술과 최소침습수술을 받은 암 환자 69명의 회복 상태를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최소침습수술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 배뇨 및 성기능 회복 기간이 짧았다. 또한 이 병원 자체조사 결과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수술 후 5년간 전체 생존율과 무병생존율(암의 재발이 없고, 합병증이 없는 비율)이 복강경을 활용한 최소침습수술에 비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 수술을 받은 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대장의 경우 장기 특성상 혈관이 집중돼 있어 주변 장기로 암세포 전이가 잘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수술로 암 조직을 최대한 제거한 뒤에는 보조 항암요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해 혹시 남아 있을 암세포를 없애는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런 항암요법의 일환으로 ‘고열 복강 내 항암치료(HIPEC)’가 개발됐다. 이는 대장암 환자 중 복막에 암이 전이된 난치성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방법으로 환자에게 특수 항암제를 섞은 40∼43도의 약물을 복막 안에 뿌리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 치료법을 통해 향후 10년간 환자의 생존율을 최대 41%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치료보다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대장내시경을 통해 암 발병 상태를 조기에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이와 더불어 식단도 잘 조절해야 한다. 대장암은 ‘식습관에 의한 서구형 암’이라고 불릴 만큼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육류와 가공육 섭취가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게 학계의 정설. 따라서 동물성 단백질보다는 식물성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많은 채소와 과일을 자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천/경기/굿모닝 건강칼럼]내장지방, 대장암 발생 가능성 높여

(동아일보 2014-09-26 03:09:30)

인하대병원 가정의학과 이연지 교수

 

건강에 자신 있던 주부 김모 씨(45)는 건강검진 대장내시경 결과 2cm 크기의 악성 종양이 발견돼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 비만센터를 찾았다. 김 씨는 대장암의 가족력도 없었지만 문제는 비만이었다. 김 씨처럼 암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고 안정기에 들어선 환자들이 최근 비만센터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비만이 각종 암의 발병 및 재발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대장암 관련 논문을 모아 필자가 보고한 ‘암 분석 자료’(Cancer Causes and control 2011)에 따르면 고도비만인 사람이 대장암의 전단계인 ‘대장용종의 발생률’이 최고 69%나 높았다. 임상대장학문학회의 보고에서도 비만이 대장암의 발생률을 40%, 대장암 환자의 사망률을 30% 이상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체중보다는 체지방률, 특히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는 ‘내장지방’이 암 발생을 촉진하거나 악화하는 원인이 된다. 대장암 환자의 경우 암의 재발을 막고 면역력을 유지하기 위해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수면습관을 들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게 좋다. 태운 음식 등 발암 물질은 피하고 충분한 단백질 섭취, 트랜스 지방과 단순당처럼 내장 지방을 살찌우는 음식을 피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규칙적인 운동을 주 5회 이상 꾸준히 해 근육을 키우면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허리둘레가 100cm를 넘는다면 신체의 에너지대사 균형이 깨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대장암 발병의 위험 정도는 체중보다 허리둘레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일주일에 1cm씩 허리둘레를 줄여 90cm 이하가 된다면 비만 때문에 암이 재발할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이진수 전 국립암센터 원장 “癌은 미래 성장동력… 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죠”

(동아일보 2014-11-29 03:52:10)

[오뚜기와 함께하는 오뚜기 인생]

 

‘금연 전도사’ 이진수 전 국립암센터 원장. 그는 “암은 결코 투병 대상이 아니며, 친구처럼 같이 사는 것이지 완치돼서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은 가도 가도 황톳길. 막막하고 아득하다. 어떤 이는 노래 부르며 가고, 어떤 이는 슬피 울면서 간다. 누구는 순풍에 돛단 듯 가고, 누구는 눈보라 폭풍우를 헤치며 간다.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절뚝이며 간다. 바로 ‘오뚝이 인생’이다.

‘세게/더 세게/나를 쳐라//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한명희 시인 ‘오뚝이’ 전문)

그렇다고 ‘10전10기’의 삶만이 꼭 ‘오뚝’한 것인가. 실패와 성공이 요동치는 인생만이 반드시 ‘오뚝오뚝’ 한 것인가. 아니다. 한평생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도 오뚝하다. 사노라면 몸은 쓰러지지 않아도, 가슴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바늘쌈을 삼킨 듯 콕! 콕! 밤새도록 창자를 찌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 바늘로 한 땀 한 땀 우물을 파는 사람. 도끼날을 갈아 바늘을 만드는 사람. 누가 뭐래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는 사람. 그리하여 처음은 미미하였으나 마침내 그 끝이 창대하게 오뚝오뚝 선 인생.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오뚝 인생’ 아닐까.

이진수 전 국립암센터 원장(64)은 쿨하다. 도무지 티를 내지 않는다. 세계적인 폐암 권위자로서 이름이 높지만, 그런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그는 온화하고 조용하다. 어디에 나서길 꺼린다. 하지만 담배 이야기만 나오면 담빡 달아오른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금연 전도사.

“담배와 담배연기엔 69종의 발암물질과 70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벤젠, 페놀과 같은 물질은 물론 청산가스, 비소 등의 독극물 성분도 있다. 흡연은 전체 암 사망 원인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2012년 기준)만 놓고 보면 42∼4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마 50%가 넘는 중국 남성 흡연율 다음이 아닌가 싶다. 암 예방에는 야채나 과일이 좋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흡연자들은 보통 그런 걸 먹기 싫어한다. 담뱃값부터 올려야 한다. 서민경제에 주름살을 준다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서민들은 담배 피워서 건강을 해쳐도 된다는 말인가. 금연 지킴이랄까 ‘담파라치’ 같은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금연구역만 설정해 놓으면 뭐 하나.”

사실 그도 한때 애연가였다. 젊은 시절 딱 10년 동안(1976∼1985년) 담배를 즐겼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마흔다섯의 어느 재력가가 폐암으로 병원에 온 지 열흘 만에 눈 감는 것을 보고 끊어버렸다. 20여 년의 흡연이 젊은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물론 담배는 끊기 어렵다. 니코틴은 끈질기고 집요하다. 오죽하면 말기 폐암 환자가 ‘담배 한 개비만!’을 호소하겠는가.

“1999년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시절,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어느 재벌그룹 회장이 폐에 이상이 있는데 치료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분이 ‘수술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헌데 그분도 애연가였다. 그해 12월 23일 병원에 처음 왔는데, 금연상담부터 했다. 도저히 못 끊겠다는 환자에게는 다른 처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단박에 ‘끊겠다’고 했다. 이듬해 봄까지 금연보조제 투약과 함께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마쳤다.”

우리나라는 매년 22만 명의 암 환자가 발생한다. 이 중 폐암 환자는 한 해 2만2000여 명이 발생하고, 하루 46명꼴(한 해 1만7000여 명)로 사망한다. 영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수명이 10년 정도 짧다. 폐암확률은 비흡연자보다 15배나 높다. 하루 한 갑 피우면 10배, 두 갑이면 20배. 술은 담배에 비하면 낫지만, 문제는 분위기다. 술 마시면 담배를 찾게 되고, 그 자리는 담배연기로 자욱해진다. 비흡연자까지 덩달아 흠뻑 연기를 들이마시게 된다.

“우리나라 여성 폐암 환자의 85% 이상이 담배를 입에 대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릴 적 아버지나 할아버지 삼촌들이 피워대던 담배연기에 대책 없이 노출된 게 폐암 발병 원인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면 4, 5명의 자식들이 그 연기를 고스란히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세포분열이 왕성해서 발암물질에 취약하다. 여자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흡연 남편으로부터의 간접흡연은 어릴 때의 그것에 비교하면 약소한 편이다.”

암은 옛날부터 있었다. 평균수명이 짧아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암은 오래 살면 생기는 병일 따름이다. ‘100세 시대’ 현대인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암은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친 유전자 변화에 의해 생긴 만성병이다. 결코 어느 날 불쑥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치료도 서서히 꾸준하게 하면 된다. 설령 암 덩어리가 없어지지 않아도, 더 커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돼도 그게 어딘가.

“마흔 넘어 암 진단을 받으면 그러려니 생각해야 한다. 흔히 스트레스가 암을 만든다는 데, 그렇다고 이 세상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그보다는 스트레스 받는다고 술 마시고, 담배 마구 피우고 하는 자기학대가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암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암 진단을 받으면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 생각한다. 우리문화는 사는 것보다 죽음이 먼저다. 종교에서도 ‘염라대왕이 잡아 간다’ ‘지옥에 떨어진다’ 등 죽음을 먼저 강조한다. ‘사생결단’이란 말에서 보듯이 죽음이 먼저 나온다. 서양에선 사는 게 먼저다. 햄릿도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실제 우리나라에서 암 진단을 받은 사람 중엔 사망자보다 생존자가 훨씬 많다. 가장 최근의 암환자 5년 생존율은 66.3%다. 3명 중 2명은 산다는 얘기다. 전국 단위 암발생 통계가 잡히는 1999년부터 암 진단을 받은 후 살아있는 사람이 110만여 명(2012년 현재)에 이른다.”

의사라고 병이 피해가는 게 아니다. 1994년 12월, 이진수도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뇌하수체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다. 1989년부터 이상 징후가 왔는데도 애써 무시했다. 의사는 알기 때문에 ‘설마 내가’ 하며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사가 하는 말은 들어도, 의사 행동은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손과 목이 굵어지고, 턱뼈가 커지고, 이 사이가 벌어졌다. 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혀도 길어져 잠잘 땐 코를 드르렁거렸다. 목소리가 굵어져 바리톤이 됐다. 말단비대증이었다. 사춘기 이후에 발병한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춘기 이전에 생겼다면 꼼짝없이 ‘거인’이 될 뻔했다.

“1994년 잠깐 한국에 돌아와 의대 동창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이 하나같이 말단비대증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얼굴이 변한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수술은 근무하고 있던 MD앤더슨암센터에서 했다. 수술 중 죽을 수도 있었다. 아내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할말 없어?’라고 물었다. 난 ‘응, 없어!’라고 말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믿어주면 최선을 다한다. 수술 의사에게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보통 암환자는 귀가 얇다. 병원 순례를 하는 이유다. 개똥쑥이니 사슴피니 효소치료니 면역치료니 하는 것들에 솔깃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이젠 서구식 식단 영향으로 위암은 줄어들고 대장암이 늘고 있다. 남성은 여기에 전립샘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장암은 소화되고 남은 배설물이 오래 머무르는 직장(直腸)이나 에스결장에 많이 생긴다. 보통 역세권에 사람이 붐비고 사건사고가 많은 것과 같다. 소식(小食)하는 여성들은 변비가 문제다.

이진수는 올 6월 국립암센터 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젠 폐암센터 책임연구원으로서 백의종군 중이다. 올봄부터 자전거에 취미도 붙였다. 얼마 전 금강종주(146km)도 마쳤다.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못 치는 골프(100타)도 친다.

“난 ‘일단 소명을 받으면,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주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아니라 ‘수천명(受天命)’ 후 ‘진인사(盡人事)’한다고나 할까. 사람은 ‘플랜 B’가 있으면 실패하기 쉽다. ‘뭘 해보겠다, 꼭 하고야 말겠다’는 순간 욕심이 생기고 결국은 무리하게 된다. 우선 주어진 것부터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나에겐 두 가지 화두가 있다. 하나는 ‘암은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것. 이젠 우리도 좋은 치료약제를 개발해서 세계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또 하나는 ‘암이 사람을 행복하게도 할 수 있다’는 것. 암은 투병 대상이 아니다. 같이 살아가는 것이지 완치돼서 사는 게 아니다. 암을 친구처럼 생각해야 한다. 한 세상 산다는 건 쓰라림의 연속 아닌가. 좋든 싫든 그걸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암에 걸리면 인간은 겸허해진다. 삶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돈 많이 벌어서 뭐 하나. 사람이 자신을 낮추게 되면 자연스럽게 베풀게 되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진다.”


이진수 약력

▽1950년 11월 19일(음력) 전북 익산 용안 출생 ▽용안초-전주북중-경기고-서울대 의대 졸업(1974)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박사(2007) ▽미국 텍사스 MD앤더슨암센터 조교수·부교수·교수(1987∼2001) ▽MD앤더슨암센터 외래교수(2003∼현재)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2001∼2004) ▽12차 세계폐암학술대회 조직위원장(2003∼2007) ▽세계폐암학회 이사(2005∼2007) ▽대한암학회 회장(2010∼2011) ▽국립암센터 연구소장(2006∼2008) ▽국립암센터 원장, 재단법인 국립암센터발전기금 이사장(2008∼2014) ▽국제암대학원대 초대 총장(2013∼2014)


♣훈포장

▽알리안츠제일생명 올해를 빛낸 한국인상(2001) ▽제3회 암 예방의 날 국민훈장 동백장(2010) ▽(사)한국언론인협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2012) ▽제13회 서울대AMP대상(2014)


▼ 국립암센터 원장서 물러난 뒤 책임연구원으로 ‘백의종군’ ▼

“할머니-어머니-장모님 모두 암으로 별세… 암 연구는 내 숙명”


거제도 1차 진료 의사 시절의 이진수 전 원장(왼쪽). 이진수 전 원장 제공

1978년 10월 31일. 이진수는 만삭의 아내와 함께 미국 땅을 밟았다. 품엔 두 살배기 아들이 잠들어 있었다. 날씨는 잔뜩 찌푸렸고 을씨년스러웠다. 게다가 마침 ‘핼러윈데이’여서 집집마다 무서운 모양의 호박등불(잭오랜턴)이 걸려 있었다. 온통 검은색의 해골, 악마, 마녀, 유령 형상들이 주렁주렁했다. 몸이 오싹오싹 소름이 끼쳤다.

처음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아내의 간호사 취업비자만 믿고 부랴부랴 건너온 탓이었다.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봤지만 의료인력 모집기간이 끝나버려 소용없었다. 아내는 미국 도착 19일 만에 몸을 풀었다. ‘살림밑천’ 큰딸이 태어났다. 우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수술실 보조원부터 시작했다. 시간당 3달러 50센트. 의사와는 출입문부터 달랐다. 하지만 얻는 것도 있었다. ‘뛰는 심장을 멈추게 한 뒤 얼음으로 보존하여 수술한 뒤, 다시 뛰게 하는 신기술’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정신병동에서 환자 의무기록을 해주는 ‘하우스 스태프’ 일도 했다. 한번은 창고지기를 해보려고 갔다가 덩치(170cm 65kg)가 작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야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선배들 중에는 달랑 100달러 가지고 태평양을 건넌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우리 시대엔 죽지 않기 위해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하여튼 난 그렇게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갔고, 미국 도착 8개월 후 시카고의 노스웨스턴대 자매병원에서 내과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진수는 국내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지 못했다. 학생운동 전과가 발목을 잡았다. 대신 거제도 ‘1차 보건의료 전달체계 프로젝트’에 자원하여 1차 진료 의사를 담당했다. 서울대병원 인턴 과정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였다. 1차 진료 활동과 가족계획, 기생충 관리, 결핵관리, 모자보건 사업 등의 일을 했다. 내친김에 그곳에서 방위로 군대생활까지 마쳤다.

“거창하게 학생운동은 무슨…. 난 결코 그런 위인이 못 된다. 그저 국민건강권 보장을 말했을 뿐이다. 가난해서 걸리는 영양실조나 폐결핵 등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난 거제도에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거꾸로 나오는 아이를 두 번이나 받은 곳도 거제도였다. 의사로서 평생 신생아를 받은 것은 그게 전부다. 요즘 같으면 크게 낳기 때문에 어려웠을지도 모르는데, 당시엔 잘 못 먹고 살던 시절이라 아이들도 작게 태어나 가능했을 것이다.”

이진수의 고향은 금강 하구의 전북 익산시 용안(龍安). 1950년 난리 통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행방불명으로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전주이씨 완창대군파 11대 종손. 무녀 독남. 어머니(1926∼1975)는 아들을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보냈다. 햇수로는 여섯 살이지만, 실제로는 음력 11월생이라 5년 4개월짜리가 학교에 들어간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시절 덕성여고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는데, 천방지축 뛰어놀기 좋아하던 나를 중학입시를 위해 과외까지 시키셨다.용안읍내 양조장집에 방을 얻어 나를 포함해 4명의 개구쟁이들이 담임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공부는커녕 틈만 나면 쏘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내가 의대를 졸업하던 1974년 가을 위암진단을 받았다. 배에 물이 차서 먹는 음식마다 토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고통스러웠다. 풍습에 따라 운명하시기 전 수의를 갈아입히려는데 ‘걱정하지 마라, 난 안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1975년 8월, 그게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 허망했다. 이미 그해 봄엔 할머니가 자궁암으로 눈을 감으셨고, 10여 년 후엔 어머니와 동갑내기 장모님(1926∼1989)도 역시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쩌면 내가 미국에서 암을 전공하게 된 것은 숙명이었다.” 

 


죽음이 곁에 있기에 오늘의 삶이 찬란한 것을

(동아일보  2014-12-14 10:30:32)

평소 아름답고 행복한 웰빙이 곧 웰다잉
[특집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숨 한 번 편히 쉬어보고 죽고 싶소.”

이창재 감독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한 환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암이 온몸으로 퍼진 그 환자는 숨 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단 한 번이라도 아픔 없이 숨을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가쁜 숨의 고비마다 탄식하곤 했다. 끝내 이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그를 이 감독은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12월 4일 개봉해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의 제작 뒷이야기다.

이 감독은 신음 소리와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10개월 넘게 머물며 이 작품을 찍었다. 영화에 ‘목숨’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고통 없이 숨 쉬고 싶다’는 망자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감독은 “그날 이후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늘 나의 삶에 감사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호스피스 병동 내 환자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21일. 그 짧은 시간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이 감독은 ‘목숨’을 “사는 게 좋은 걸 잊어버린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오늘의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 앞에 기꺼이 공개한 출연자들의 유일한 바람”이라고도 했다.

삶을 바꿔놓는 누군가의 죽음

11월 말 개봉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진모영 감독의 카메라는 76년간 함께 살아온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 부부를 담는다. 평생을 신혼부부처럼 살아온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지상파 다큐 프로그램으로 방송돼 이미 화제가 된 적 있다. 스크린 안에서도 할아버지는 똑같다. 냇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 옆에 조약돌을 던져 물벼락을 맞히다가 어느샌가 꽃을 따 할머니 귀에 꽂아주고, 깊은 밤이면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는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나 첫사랑에 들뜬 소년 같은 그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영화가 촬영된 1년 4개월 사이, 생기 넘치던 할아버지는 점점 노환에 침식돼가고, 결국 어느 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 진 감독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촬영을 시작할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죽음은 도처에 있고, 불현듯 다가온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은 남은 이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이승연 실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5분 간격으로 참사를 피한 경험이 있다. 지하 빵집에 들렀다가 “오늘은 살 만한 게 없네” 하고 빠져나온 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갈랐다. 이 실장은 “그때 무엇이라도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면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 일을 겪은 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이 실장의 말이다.

“충격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이 짐 정리예요.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사람이 치워야 할 짐이 너무 많은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앞으로 남은 삶은 여행 온 것처럼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자고 마음먹었죠. 그게 죽음준비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무엇이 나한테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하다 보니 삶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 욕심내지 않고 중요한 것에만 힘을 쏟다 보니 하루하루가 오히려 충만해졌다”는 게 이 실장의 고백이다. 그는 “거의 20년 전 일이라 지금은 그때의 결심이 많이 무뎌지고 짐도 다시 늘었다”며 웃었지만, 여전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곁에 성큼 다가왔던 죽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언제든 죽음이 다가올 수 있다고 믿고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좀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창재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며 “영화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 첫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것이 내 마지막 강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죽기로 강의할 테니 여러분도 죽기로 들어달라. 비장해지라는 게 아니라 소중히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말 한 번도 휴강하거나 수업 준비를 게을리한 적 없이 학기를 마쳤다고 한다. 그는 “일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주위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변했다. 여덟 살 된 아이와도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가며 놀아준다. 죽음을 알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절실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절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76년을 해로한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다.

김영하 작가는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이탈리아 노토 지역을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노토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300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옛날 로마에서는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들을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내일은 죽을 수도 있음을 상기하는 의식이었다. 이렇게 매순간 죽음을 떠올리는 것,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죽음준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조문객을 미리 만난 의사

2000년대 초반부터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자는 취지의 ‘웰다잉’ 운동을 펼쳐온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공동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꺼렸다. 듣는 것도 싫어해 ‘하늘소풍’ ‘아름다운 마무리’ 같은 은유적인 표현을 써야 했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린다고 죽음이 다가오는 게 아니고, 죽음을 자신의 삶에서 최대한 멀리 미뤄둔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라는 데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 좋겠다”고 했다.

11월 24일 서울 신문로 각당복지재단에서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인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 심화교육’ 종강파티가 열렸다. 참가자는 웰다잉 강사가 되기 위해 지난 6개월~1년간 수십 회의 강의를 들은 이들이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매주 월요일 강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김석현 씨는 “현재 삶에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을 꿈꾸는 것이 곧 죽음준비이며, 웰다잉이자 웰빙”이라고 했다. 퇴직 교장인 손경순 씨는 이 자리를 통해 자신의 장례식 날 상영할 파워포인트(PPT)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세상 소풍을 끝내며’라는 제목을 붙인 상영물 안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재직했던 학교 학생들과의 추억, 가족과 즐거웠던 시간 등을 보여주는 사진이 가득했다. 손씨는 “조문객들이 이 영상을 보면서 나의 삶을 추억하기를 바란다”며 “그들에게 직접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PPT 안에 ‘안녕하세요. 저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같은 메시지를 녹음해 넣을까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죽음에 앞서 소중한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있는 것도 죽음준비의 장점으로 꼽힌다. 11월 16일 세상을 떠난 탤런트 김자옥 씨는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암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병이다. (죽기 전에) ‘남편한테 좋은 말을 해줘야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동료 의사들과 죽음에 관한 대담집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펴낸 정현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도 “죽음에 임박해 몸과 마음의 힘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며 고(故) 홍성훈 인천 홍정형외과 원장 사례를 소개했다. 명망 있는 의사였던 고인은 2012년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자 자신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후 지인들에게 직접 전화해 자신의 뜻을 알렸다고 한다. 후배들은 평소 사진 촬영을 즐긴 홍 원장을 위해 부랴부랴 사진전을 마련했고,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해 가까운 이들과 모두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장례식에 올 조문객을 미리 다 만난 것”이다. 이후 홍 원장은 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째 되는 날 잠든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정 교수는 “이 죽음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본 고 정기용 건축가의 죽음과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2012년 대장암으로 눈을 감은 정기용 건축가 역시 암 선고 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 사용했다. 임종을 앞둔 그는 침대에 실려 가족, 사무실 동료 등과 함께 가까운 숲으로 봄나들이를 떠난다. 그곳에서 남긴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그대로 그의 유언이 됐다. 정 건축가는 영화 속에서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철학 공부를 해야 된다.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 (중략)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죽음준비의 한 방법으로 건강할 때 미리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두자는 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전의료의향서 쓰기다. 전문가들은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환자가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인공호흡기 부착, 심폐소생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연명치료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의료비와 환자 및 가족의 고통이 발생한다. 문제는 환자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의식불명 상태 등에 놓여 자신의 뜻을 명확히 표시하지 못할 경우 치료를 중단하기 힘들다는 것.

대법원은 1997년 12월 의식불명 상태의 뇌출혈 환자를 그 아내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킨 의료진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반면 2009년에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던 김모 할머니 가족이 “환자가 평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했다”며 병원을 상대로 낸 인공호흡기 제거 청구 소송에서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김 할머니가 평소 일관되게 인공호흡기 치료 등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점을 참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생전에 임종기 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2010년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캠페인도 시작됐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의 한 장면.

사전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 미리 특정 치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두는 서류를 가리키는 말. 구체적으로는 심폐소생술 중단, 인공호흡기 부착 거부, 기도삽관 거부 또는 기관절개술 거부, 승압제·강심제 등 약제 투여 거부, 통증약제 요청 등에 대한 의견이다. 대한의사협회 등이 2009년 마련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수분 및 영양공급 등 일반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특수 연명치료의 경우 종류와 조건에 따라 구체적으로 중단 혹은 지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는 담당의사(또는 병원윤리위원회)가 확인하면 환자의 의사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후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문의와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관련 서식을 무료 배포하는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문의 02-3381-2670) 자원봉사자 유명숙 씨는 “평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화 상담을 하는데, 보통 하루에 40~50통 씩 전화가 온다”며 “사전의료의향서 배포 건수는 2013년 1만4000장, 2014년은 10월 말까지 2만4407장”이라고 밝혔다. 홍양희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중환자실에서 가족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온갖 의료기기가 내는 소음에 둘러싸여 생을 마무리하기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죽음을 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마무리

1983년 세상을 떠난 미국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스코트 니어링의 바람도 그것이었다. 100세가 됐을 때 음식 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맞은 그는 미리 작성해둔 유언장에 죽음의 순간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의 아내였던 헬렌 니어링이 저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공개한 이 글에는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다음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중략)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이 뜻대로 세상을 떠난 스코트의 마지막에 대해 헬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천천히 천천히 그이는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중략) 나는 은총에 가득 찬 그이의 떠남에서 한 생명체가 자기 힘을 다 쓰고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목격했다. 스코트는 자신의 시간을 가졌고, 바라던 때에 갔다.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이 많은 이에게 ‘아름다운 죽음’의 사례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이승연 실장은 “어떤 죽음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사람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잔소리가 암 발병 막는다? 예방수칙 대부분이…

(동아일보 2014-10-14 10: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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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종양학과 학생이 현미경을 이용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국제암대학원대학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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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문적배경을 가진 김연희 교수가 수업을 하고 있다.국제암대학원대학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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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암대학원대학교는 일산 국립암센터안에 있다. 대학원은 암센터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한국형 암관리'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국제암대학원대학교제공

 

엄마 잔소리가 암을 막는다

2013년 5월 세계적인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유방암에 걸린 것도 아닌데, 유방암을 일으키는 브라카(BRCA)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암 예방을 위해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과감히 포기한 그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앤젤리나 졸리는 개인적으로 암을 관리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암은 이미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암을 사회적인 관심 대상으로 정하고 정부와 관련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가 가능한 질병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전제조건은 연구-치료-관리를 하나로 묶는 통합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한국은 1996년부터 암정복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암 관리를 해오고 있지만 연구-치료-관리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이 없어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다는 평가다.

올 3월에 문을 연 국제암대학원대학교는 바로 그 점에 착목해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암 관리'에 도전하고 있다. 김인후 대학원장을 만나 암과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제암대학원대학교의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국제암대학원대학교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는 국립암센터는 2000년 설립 이후 암 연구와 치료, 국가 암 관리 지원을 하면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암센터가 국립이기에 한국의 암 관리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대학원은 지금까지 암센터가 연구소, 병원, 암관리사업본부와 함께 축적해온 '한국의 암 관리 노하우'를 국내외에서 온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암 연구와 암 관리의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암 관리의 통합적인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키고, 암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조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학원 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
"통합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국립암센터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우리대학원에는 겸임교원이 전임교원보다 3배나 많은데 전부 국립암센터에서 암 환자를 돌보는 의사나 연구진들이다. 이들은 필요한 과목을 스스로 개설하고 학생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연구에 도움을 주는 등 여느 대학의 겸임교원과는 다르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국립암센터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학생들은 과에 관계없이 암 관련 기초와 암 관리 분야의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한다. 2017학년도에 암관리정책학과와 시스템종양생물학과를 통합한 박사과정이 생기면 제도화될 것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을 졸업하고 암관리정책학과에 재학 중인 김이래 씨는 "국제보건에 관심이 있는데 마음대로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통합교육 덕에 졸업 후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대학원의 특징인 '통합적 교육'을 할 수 있는 전임교원은 누가 있는지.
"스웨덴 국적의 린드로스 교수는 유전체 연구의 권위자로 독일 암 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김연희 교수는 일본 도쿄대에서 생물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엠디엔더슨 암센터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라이슨대학 MBA 출신이기도 해 지금은 신약개발 과정을 가르치고 있지만 박사과정이 생기면 '지식재산권 이전'에 대한 강의도 할 예정이다. 암 치료제로 신약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은 약에 대한 지식은 물론 약의 상품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지식재산권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통계학을 전공한 후 임상연구협력센터장을 맡고 있는 남병호 교수 등 여러 명이 있다."
국제암대학원대학교의 강점 중 하나는 교수가 학생보다 많다는 것. 교수진은 석좌교수 2명, 전임교수 11명, 겸임교수 32명 등 45명에 달하는데 재학생보다 10명이나 많은 인원이다.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는….
"암관리학과를 나온 학생들은 대부분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소에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학생들 취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만약 한국학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국가연구원 입사나 박사과정 진학을 유도해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외국학생들은 대부분 자기나라로 돌아가 암 관련 전문가 역할을 할 것이다."

-35명의 학생 중 외국인 학생이 14명이다.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수업을 받는 데는 지장은 없는가. 학생 선발과정과 장학금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
"외국 학생들이 많은 것은 국립암센터가 지금까지 쌓아온 암 연구와 관리 능력을 외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데 이 영향을 받아서 동남아시아 출신 유학생이 많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무료 기숙사, 장학금 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외국인 학생들도 수업을 듣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학생들도 문·이과 제한 없이 선발한다. 지금까지는 면접이 당락을 갈랐지만 내년부터는 에세이도 볼 예정이다. 영어 시험은 따로 보지 않지만 토익 700점, 텝스 550을 비롯해 TOEFL, IELTS 등에 각각의 기준이 있다. 장학금은 학생들 거의 전부가 받는다고 보면 된다. 모든 신입생들은 첫 학기에 45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 두 번째 학기부터는 성적장학금과 국제장학금 등을 받을 수 있다. 매 학기말 장학금위원회를 열어 많은 학생들이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성적기준을 정한다. 올 3월 입학한 신입생 모두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김인후 원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암 기초연구의 권위자다. 동아대 의대 교수를 지낸 뒤 2001년부터 국립암센터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다 초대 대학원장을 맡았다. 암 권위자를 만난 김에 일반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암 예방 수칙에 대해 물어봤다.

김 원장은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일반적인 조언과 함께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암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걸리므로 한 가지만 주의한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 '담배 피우지 마라' '음식 골고루 먹어라' '술 너무 마시지 마라' 등등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여러 잔소리에 암 예방수칙의 대부분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김 원장은 한국의 암 완치율(치료 후 5년 생존율)이 67%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설사 암에 걸렸다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암은 사형선고가 아니라 극복하고 조절이 가능한 질병이라는 인식 전환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며 '암과의 동행'이 가능하도록 국제암대학원대학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