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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

[주간조선]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숫자, 앞으로가 고비인 이유가 있다는데... (조선일보 2014.01.29 14:50)

[주간조선]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숫자, 앞으로가 고비인 이유가 있다는데...

 

경기도 파주에 사는 임모(47)씨는 노인성 치매를 앓는 아버지(78)를 5년째 간호 중이다. 경북 포항에 살던 아버지는 5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시작됐다. “마누라가 바람이 났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등 의처 증세를 보이다, 결국 집 밖으로 나갔다가 집을 찾아오지 못하기 일쑤였다.

포항에도 일반 요양원은 많았지만, 치매환자들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없었다. 치매가 찾아온 처음 2년간 아버지는 어머니(75)와 함께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막내딸이 있는 일산으로 올라와 외래치료를 받았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던 어머니도 3년 전쯤부터 우울증을 앓고 뇌혈관에도 이상이 생겼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치매전문 제이요양병원에서 치매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치매전문 제이요양병원에서 치매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당초 막내딸은 아버지를 직접 돌보기 위해 2~3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직접 돌보고,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까지 추스르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 임씨가 찾은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요양병원. 간병사 두 명이 24시간 돌보는 6인실에 아버지를 입원시켰다. 한 달에 드는 비용은 간병비 90만원을 포함해 180만~200만원가량. 현재 어머니는 매일 찾아와 남편을 면회하고, 맞벌이를 하는 자신은 일주일에 2~3번씩 아버지를 찾는다. 임씨는 “아버지가 아내와 막내딸을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면서도 병원에 입원한 다음부터는 상태가 호전돼 가끔씩 자신과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로에 있는 제이요양병원이 임씨의 아버지가 있는 병원이다. 2012년 개원해 18개 병실, 82개 병상을 갖춘 중소형 요양병원이다. ‘도심 속 치매 요양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일부에서 받는 곳이다. 지난 1월 21일 기자가 제이요양병원을 취재하고 나서 든 생각은 ‘적어도 이 병원에서만큼은 치매가 관리가능한 병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치매요양병원의 현황을 취재하기 위해 앞서 서울시 관내 다른 요양원 15곳과 접촉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취재를 거부했다. 최근 요양병원의 치매환자 학대 등이 이슈화되면서 언론 공개를 꺼린 탓이었다.

지상 5층 건물 2층에 입주한 제이요양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활운동치료실이 펼쳐졌다. 병원이라기보다 알록달록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같았다. 재활운동치료실에서는 할머니 전모(80)씨와 이모(75)씨가 환자복을 입고 작업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씨는 오른팔과 왼팔을 번갈아 가며 반원형 휠에 끼워진 12개 링을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옮기길 반복했다.

전씨는 오른팔을 맷돌 모양의 장치에 올린 뒤 둥글게 돌리길 반복했다. 수간호사는 “치매증세를 앓고 있는 분”이라고 귀띔했다. 재활운동치료실에는 이씨와 전씨 외에도 재활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운동기구를 타거나 물리치료를 받는 노인들이 있었다. 치매전문병원이 아닌 노인들을 위한 헬스클럽 같았다.

이 병원의 수간호사로 있는 이미애 간호과장에 따르면, 제이요양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의 70~80%는 치매환자다. 평균연령은 80대 내외. 병원 안에서는 외부에서 신는 신발 대신 실내화를 신고 다닌다. 병실마다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문턱은 없고, 화장실은 휠체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널찍했다. 6인실, 4인실, 1인실 등 3종류의 병실을 갖췄는데, 환자 상태와 보호자의 재정 여건에 따라 병실을 선택할 수 있다.

15명의 간호사가 환자 4명당 1명꼴로 돌보고 있다. 이들 간호사 외에 간병협회에서 파견하는 간병사 28명도 근무하고 있다. 간병사들은 요양병원에서 24시간 환자와 함께 먹고 자고 머물면서 치매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온 유순희(68)씨는 제이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한다.

◇ 치매 병원 간병사는 99%가 조선족 동포들

유씨에 따르면, 간병사로 일하는 사람의 99%가 조선족 동포들이다. 유씨는 원래 한국에 와서 가정부로 일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온 뒤 간병사로 전업했다고 한다. 지금은 14년째 전문 간병사로 일하고 있다.

간병사 유씨는 아침에 환자를 세수시키고 양치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밥을 떠먹여 주고, 대소변 처리까지 도와준다. 밤에는 환자 옆 보호자 침상에서 함께 자며 24시간 환자를 돌봐준다. 하루에 받는 일당은 6만3000원가량. 유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들이 ‘고되니 그만두라’고 했지만 가정부보다 더 적성에 맞아서 간병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조문경 인지치료실장에 따르면, 치매환자는 24시간 간병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고령의 치매환자가 집에 방치돼 있을 경우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다고 했다. 욕창 예방을 위해 환자를 침상에서 돌아눕힐 때도 전문적인 간병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치매환자에게 적합한 식단을 구성하는 것도 집에서는 하기 힘든 부분이다.

일산에 사는 김덕기(81)씨도 치매에 걸린 동갑의 아내를 제이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대기업 계열사를 경영하다가 은퇴한 김씨는 아내 이씨(81)와 반평생을 함께했다. 부부가 서울대병원에서 3개월에 한 번꼴로 정기 건강검진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5년 전쯤부터 아내에게 초기 치매 증상이 시작됐다. “사무실에 가지 말라”며 붙잡고, 외출해 모임에 있는데 수차례씩 전화를 걸어왔다. 2012년 8월 불어닥친 태풍에 아파트의 베란다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를 겪은 후 증상이 더욱 악화됐다. 현재 김씨의 부인은 기억장애와 함께 언어장애를 앓고 있다.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싫어 처음에는 집에 간병사를 불러 간호할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집에서는 간병시설 등이 부족해 아내를 돌보기에 역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며느리가 수소문한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간병비를 포함해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은 200만원 정도.

자신은 매일 병원에 출퇴근하면서 아내를 돌본다. 김씨는 “치매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요양병원이 대형병원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며 “정부가 장기저리로 요양병원에 융자를 해 시설투자를 유도하면 치매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환자와 보호자들이 무작정 선호하는 대형병원들은 치매환자들을 내심 꺼리는 편이다. 치매환자들이 다른 환자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이상행동을 보일 때가 종종 있어서다. 제이요양병원의 이준성 원장은 “일반환자들의 불평 때문에 대형병원은 치매환자를 못 받는다”며 “누워 있는 환자는 받아도 움직이는 환자는 잘 안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경영주 입장에서는 이 점이 맹점이다. 요양등급에 따르면, 누워 있는 환자는 1등급인데, 걸어다니는 환자는 3등급 미만밖에 못 받기 때문이다. 등급이 낮으면 장기 입원치료가 불가능하다. 치매환자는 배회하는 특성을 보이는 등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지만, 도리어 1등급 이상의 밀착보호를 요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때문에 “치매환자에 한해 기존의 요양등급(1~5등급)과 별도의 등급을 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 이준성 원장의 주장이다.

이 원장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질병인 치매는 짧은 시기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일제강점기, 6·25전쟁, IMF외환위기 같은 심각한 사회적 충격을 많이 받은 노인들이 많아 앞으로가 고비”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치매환자의 대부분은 이같은 사회적 충격을 몸소 겪은 세대들로, 특히 외환위기 때 자녀들의 실직 사태를 본 것이 엄청난 충격이 됐다고 한다. 이준성 원장은 “남녀불문하고 80세 이상 45~50%에서는 치매가 시작된다”며 “고령화사회에서 치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경고했다.

 

 

“치료의 핵심은 가족의 이해와 지지”

 (주간조선  2014.01.27)

치매 명의 4人 |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

 

photo 김종현 영상미디어 기자

이동영(48)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치매 명의로 불린다. 지난 1월 17일 서울대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완벽한 치료법이 없다는 게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뇌종양이 있어도 치매 증상을 보인다. 이 교수는 “이런 경우라면 갑상선 호르몬을 처방하거나 종양을 수술하면 치매 증상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치매환자를 처음 만난 것은 신경정신과 전공의 시절인 1991년. 치료제가 전혀 없던 시절부터 치매환자를 임상에서 만났다. 1992년 대학원 학생으로 우종인 박사의 제자로 치매를 다루기 시작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대병원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치매클리닉을 개설했다.
   
   “그때는 의사들이 치매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약이 없으니 의사들도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와도 심각하지 않으면 아직 괜찮다고 안심시키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사회적 관심도 없었다.” 그는 난폭행동 증상을 보이는 70대 남성 치매환자와 그 부인을 잊지 못한다. 함께 온 부인은 간병 스트레스로 심각한 우울증 상태였다. 절망한 나머지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부인은 주변 권유로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다. “환자의 문제행동에 대한 치료와 함께 부인의 우울증을 치료해 드렸는데 ‘선생님, 이제는 집에서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밝은 웃음을 보이던 부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치매환자의 70%가량은 알츠하이머성 치매다. 이 교수가 완벽한 치료법이 없다고 말한 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가리킨다. 이 교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환자에게는 치료제로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투여한다”고 했다. 콜린(Choline)이란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 콜린은 기억·언어·판단력 같은 인지기능을 담당한다. 콜린분해효소 억제제가 미국에서 개발된 게 1993년이다. 콜린분해효소 억제제는 치매 증상을 완화 또는 지연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초기 치매환자의 경우 이 약을 쓰면 좀 더 오랜 기간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다. 인지기능이 나빠지는 속도를 줄여 줄 뿐만 아니라 문제행동의 발생도 줄여준다. 기억력 저하도 문제지만 대개 문제행동이 심해지면 가족들이 견디기 힘들고 요양시설을 고려하게 된다.”
   
   2002년 미국 피츠버그대가 발표한 ‘콜린분해효소 억제제의 예후 개선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 교수의 말을 뒷받침한다. 재가 치매환자에게 투약하고 8년간 추적한 결과 약을 투약하지 않은 사람은 90% 이상이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반면 약을 투여한 치매환자는 20% 정도만이 요양시설에 입소했다.
   
   그가 치매 명의라고 불리는 까닭은 뭘까. “치매는 쉬운 병이 결코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나 가족을 도울 방법은 있다는 생각으로 진료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약물치료가 힘든 경우 때로는 비약물적 접근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약물치료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부작용 없이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많은 경우 치매 치료의 핵심은 환자와 가족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다.”
   
   이 교수가 말하는 비약물적 접근 중 하나는 가족지지프로그램이다. 가족들이 치매라는 병에 대해 이해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교수는 서울시의 지역사회 치매관리사업을 총괄하는 서울시광역치매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25개 구청이 각각 운영하는 치매지원센터를 통해 환자와 가족들이 약물치료 이외의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야 치매 안 걸린다”

 (주간조선 2014.01.27)

치매 명의 4人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어수 교수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김어수(43) 교수는 2003년부터 이 병원 정신건강센터에서 전문의 생활을 시작했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치매 치료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10년 이상 치매 치료를 해 온 베테랑이다. 그는 현재 학교 조교수로 있으면서 서울 서대문치매지원센터장도 겸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3년간 3억원씩 보건복지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다중적 알츠하미어 억제 기전을 갖는 약물 개발’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언론의 수많은 치매 관련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취재원이기도 하다. 특히 김 교수는 스트레스가 치매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것이 학계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 치료법보다는 삶의 자세와 방향이 치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교수가 치매 치료와 관련해 ‘삶의 자세’에 주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처음에 이쪽 분야를 전공하고 나서는 ‘에이베타 아밀로이드’(치매 유발과 연관이 있는 체내 물질)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런 물질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들이 항치매와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목적의식이 있어 사는 사람이 있고 할 수 없이 돈 버느라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20년을 따라다녀 봤더니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치매에 덜 걸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인간관계에 근거한 활동들이 단순히 항(抗)치매 효과가 좋기는 좋더라가 아니라 운동이나 금연 같은 것보다 더 높은 항치매 효과가 밝혀졌습니다.”
   
   김 교수도 다른 의사들처럼 약물개발에도 참여하고 환자들에게 처방도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예방법과 치료법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다. “흔히들 금연, 금주, 운동이 치매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이런 것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 ‘사람들과의 교류’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회생활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으면 치매에 덜 걸려요. 여기에는 가족들과의 만남도 포함됩니다. 사실 치매에 걸렸을 때도 꾸준히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 집에만 있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그는 사람들하고 만나는 것만큼 환자가 자꾸 호기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기 치매 같은 경우 기억력 감퇴는 꽤 있지만 다른 문제는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 분들이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바빠서 지나쳤던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면 훨씬 증세가 좋아집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치매에 대한 치료만큼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삶도 바꿔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치매의 궁극적 목표는 기억장애가 없어지는 상태를 만드는 건데, 지금 상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완치가 없다면 결국 조금이라도 딜레이시키는 게 중요한데, 단순 딜레이가 문제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기억 장애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가 문제인 거죠. 완치가 1번 목표지만 완치가 안 됐을 경우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돕는 것입니다.”
   
   인터뷰 막판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치매 명의라 불리는 40대 초반 김 교수는 과연 부모님을 어떻게 돌볼까?’ 김 교수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버지가 교회에서 은퇴장로들과 함께 합창단을 하시면서 순회공연을 다니시는데 예전에는 ‘힘드시니까 그런 곳에 다니시지 말라’고 했는데 연구 결과 사람들과의 교류가 얼마나 항치매에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된 후부터는 ‘감기 몸살 좀 걸리면 어떠세요? 사람들 많이 만나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시고 사시라’고 하고 있어요.”

 

 

“고령, 여성, 저학력, 두부외상환자 위험”

 (주간조선  2014.01.27)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재홍(53) 교수는 1994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신경과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그는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공의를 거쳐 서울아산병원 파킨슨-알츠하이머센터 소장을 지냈다. 지난 1월 17일 만난 이 교수에 따르면, 아산병원은 신경과, 정신과, 노인내과 등 약 10명의 치매 전문 의료진을 갖추고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비슷한 규모의 다른 대형병원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그가 하루에 보는 치매환자는 20명 내외. 한 달에 250명 정도의 치매환자를 보살핀다.
   
   대형병원을 찾는 치매환자들은 본격적인 치매에 들어서기 전의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이 많다. 치매는 주관적 기억장애, 경도 인지장애, 치매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데, 대형병원을 찾는 기억력 장애 환자의 70%는 앞의 두 단계에 해당한다. 5~6년 전부터 치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며 생긴 변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은 주로 70대 이상 고령층이 대다수다.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에 비해 2배 정도 많은 것이 노인성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이다. (6년 이하) 저학력, 두부 외상, 치매의 가족력이 노인성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어려서의 영양 상태가 부실한 것이 노년의 치매와 연관성이 있다”며 “중년에 생기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혈관성 위험인자가 노년에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도 있다”고 했다.
   
   특히 60세 이전에 치매가 찾아오는 조발성 치매환자는 더욱 암담하다. 그는 “이는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노동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라며 “부양능력이 없는 배우자나 자녀들이 환자 간병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라고 했다.
   
   아직 치매에 획기적 치료법은 없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치료 여지가 많지만,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치매의 경우 일시적으로 인지기능을 개선시키거나 치매의 진행을 조금 늦춰주는 정도가 고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현재 사용 중인 치매치료약도 통틀어 4가지에 불과하다. 2003년에 마지막으로 치매 치료 신약이 출시된 지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새 치료제 개발은 감감무소식이다. “5년 뒤면 신약이 개발될 것”이란 얘기가 신문에 거의 해마다 등장하지만, 아직 결과물은 없다.
   
   이 교수는 “신약 자체가 드물다 보니 저소득 국가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나 치매 치료 수준은 대동소이한 편”이라고 했다. 다만, 선진국에서 막강한 자금을 이용해 치매치료제 연구개발이 활발한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진행 속도를 늦추는 의미밖에 없는 현행 치매약도 복용하다 중단하면 치매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식습관과 생활습관 두 가지로 치매를 일정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치매예방 음식으로 권장하는 것은 뇌신경세포 보호성분인 항산화제가 많이 포함된 식품이다. 녹황색채소, 등푸른생선, 견과류, 녹차를 비롯 적당량의 적포도주(레드와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항산화제가 함유된 식품은 뇌세포막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가 식습관보다 더 강조하는 것은 생활습관이다. 이 교수는 “활발한 두뇌활동, 예를 들면 신문과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자주 쓰는 것이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며 “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거나 외국어 공부나 악기 연주 같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특히 “매일 30분 걷기 등 적당한 신체활동도 뇌의 퇴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재홍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년이 되어도 사회활동이나 여가활동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10년 후면 치매예방주사 나온다”

 (주간조선 2014.01.27)

치매 정복 2단계 기초·임상·공학 융합연구 지난해 11월 시동
‘치매예측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 5년간 250억~300억원 투입

 

▲ MRI 영상으로는 정상이지만 아밀로이드 PET 영상에 따르면 B 노인은 이미 치매가 진행 중이다. 자료: 서울대 이동영교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는 치매 명의(名醫)로 유명하다. 이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의 치매 연구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난 1월 17일 서울대병원 본관 6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이 교수는 데스크톱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70대 남자 두 명의 영상이 각각 세 장씩 보였다.
   
   이 교수는 화면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왼쪽에는 MRI 영상, 가운데는 포도당 PET 영상, 오른쪽은 아밀로이드 PET 영상이라고 했다. 두 남자는 MRI상으로 정상 판독을 받았다. 가운데 포도당 PET 사진에서도 두 사람은 육안으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밀로이드 PET 사진상으로는 딴판이었다. 한 사람은 아밀로이드 PET 사진으로도 정상인 푸른색을 띠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뇌 속이 연두색 빛을 띠었다. 이동영 교수는 연둣빛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핵심 병리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쌓여서 치매로 발전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사진 참조>
   
   “혈관을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달라붙는 물질을 주사하고 뇌 PET를 찍으면 살아 있는 사람의 뇌 속에 쌓여 있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볼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약 15년 이전부터 뇌 속에서는 이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이 시작된다. 지금은 치매가 아니지만 향후 치매로 발병할 소지가 크다. 아밀로이드 PET는 아직은 임상진료에서 쓰이고 있지 않다. 아밀로이드 PET를 사용할 경우 치매 원인진단 정확도를 현재 85~90% 수준에서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가 없는 날에는 연구실에서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뇌 사진을 들여다본다. 왜 그럴까? 그는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의 총괄 지휘자다. ‘치매예측을 위한…’은 미래창조부가 올해 새로 시작한 사업이다.
   
   암환자 평균 생존 기간 2년. 그러나 치매환자 평균 생존 기간 12년. 어느 가정에 치매환자가 생기면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는 무수한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가족의 비극은 치매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인부부의 최대 걱정은 혹시 치매에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80대 노인 인구의 30%에서 치매증상이 나타난다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2013년 57만명이던 치매인구는 2024년 100만명을 넘고, 2043년에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예방·진단·치료가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치매연구는 지난해까지 10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2단계로 접어들었다. 1단계 프로젝트는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10년간 1000억원이 투입된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사업단’이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김경진 교수가 이끈 사업단은 정부 최대 연구개발사업으로 뇌연구의 인프라를 확실히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뇌연구는 대학·병원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 개발사업단’이 10년간 뇌연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뇌연구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실례로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 개발사업단’의 묵인희 교수(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의 연구팀은 치매치료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 국제 특허를 받았다. 서울대 측은 이 특허기술을 벤처기업에 팔았고, 벤처기업이 2010년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에 2억9000만달러에 판매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뇌연구 촉진 2단계 기본계획의 과제는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 서울대 이동영 교수가 총괄책임자로 선정됐고, 서울대·조선대·삼성서울병원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지난해 11월 확정된 이 과제 수행에는 5년간 250억~300억원이 투입된다.
   
   전국의 종합병원에는 치매 전문의사가 많다. 이들은 임상 경험을 토대로 치매치료 및 조기진단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신촌세브란스병원 김어수 교수 같은 이는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다중적 알츠하이머 억제 기전을 갖는 약물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야말로 현재 최전선에서 치매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치매에 걸리면 뇌가 망가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치매예측 뇌지도 구축’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를 대략은 알고 있어도 자세히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알려진 대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1억달러(약 1100억원)을 투자해 정상인의 뇌지도를 만들고 있다. 묵인희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그렇게 돈을 쓸 수 없으니 집중을 해야 한다. 나이 든 분 중에서 정상인(60세 이상)을 대상으로 MRI나 PET 등 뇌 영상을 촬영해 정상 뇌지도를 만든다. 향후 치매 위험이 높은 사람의 뇌가 보이는 특징을 밝혀서 치매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뇌지도를 그려 보자는 것이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가 이루어지므로 IRB(임상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IRB 승인하에 60세 이상 연구대상자를 모으게 되는데, 각 대상자 분들은 서면 동의 과정을 거쳐 연구에 참여한다.”
   
   서울대·조선대·삼성서울병원의 공동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뇌 영상 장비(MRI, PET)를 활용하여 한국인 표준 치매예측 뇌지도를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액(혈액, 유전체) 기반 치매 조기진단 바이오 마커(marker)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기초·임상·공학이 모인 대표적인 융합연구 분야다.
   
   뇌 영상 장비를 활용하는 연구진은 이동영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PET 연구 책임자), 이건호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교수(MRI 연구 책임자)가 이끈다.
   
   체액 기반 치매조기진단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연구 책임자는 묵인희 서울대 대학원 의과학과 교수(생체표지자 연구 책임자)와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유전체 연구 책임자). 위에서 말한 대로, 이동영 서울대 교수가 총괄책임자이다. 이동영 교수는 서울시광역치매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시범사업 기간으로 예산은 6억5000만원. 본 사업은 7월부터 시작한다. 매년 40억~50억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여기서 궁금증은 조선대 교수 2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특별한 배경이 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전남 지역의 고령화율은 22%에 이른다. 전국 평균 12%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는 전남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서울 시립 동부노인전문요양원의 오락시간. photo 정경열 조선일보 기자


   총괄책임자인 이동영 교수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이 교수는 “이번 사업은 치매 여부를 정확하게 빨리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진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뒤늦게 치료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60세 이상 중 정상인, 치매 고위험군, 치매 환자군을 모집하여 포괄적인 임상평가와 함께 MRI, PET, 혈액검사, 유전자검사 등을 시행하고 매년 추적조사를 벌인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은 치매가 아니지만 몇 년 뒤 치매가 오는 사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찾을 수 있다. 추적조사를 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치매로 진행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치매로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치매로 진행하는 군(群)과 진행하지 않는 군이 혈액, 유전자, MRI, PET상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치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가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서 발병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일반인의 궁금증은 그렇다면 뇌 속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를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의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치매로 진행되기 전의 상태에서 조기진단 혹은 예측진단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묵인희 교수팀은 치매환자와 정상인의 혈액에 기반한 ‘치매 조기진단용 생체표지자 발굴’ 분야를 전담한다.
   
   “환자에게서 혈액을 받아 치매 관련 진단 표지자를 찾는 일이 내 연구 분야다. 뇌 영상은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든다. 혈액검사는 비용이 싸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다. 혈액 기반 진단 표지자를 찾게 되면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쉽게 치매를 조기 진단할 수 있다.”
   
   이건호 교수는 MRI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교수이다. 이건호 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60~80대 노인 1000명의 3차원 뇌 영상을 확보했다. 이건호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 해 1000명씩 늘려 5000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종원 교수의 명함에는 ‘삼성서울병원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아래에 교수·전문의·의학박사라고 인쇄돼 있다. 진단검사의학과 연구실에 앉아 먼저 유전자가 아닌 유전체인 까닭을 물었다. 김종원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의 ‘유전체 연구 책임자’다. 김 교수는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를 뒤져서 분석 연구하는 게 유전체(體) 연구”라고 말했다. 치매 유전체 연구에 대한 김 교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치매환자를 치료하고 분석한 결과 치매에도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즉 치매에 걸린 부모를 둔 사람은 치매 발병 가능성이 높았다.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치매 유전자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부모 중 한 명이 치매면 자식도 일부는 치매가 나타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990년대 초까지 강력한 치매 유전자 4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성 치매환자들은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미국 의학계에서 치매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답보 상태를 보였다. 2002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공동연구로 인간 유전체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 이후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작은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여러 개가 모여 발병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2008년부터 본격 연구를 시작했고, 2010년부터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치매 발병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20~30개가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의 조합이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체 연구’의 필요성이 생긴다.
   
   “한국인에게서 어떤 유전자가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발견된 유전자를 조사하고 여기에 한국인에게만 있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아 치매환자 조기진단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팀의 임무다.”
   
   김종원 교수의 팀에는 연구원이 10명이 있다. 김 교수는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진료를 하는 임상의다. 여기에 연구까지 맡고 있다. “환자를 보고 있으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하고 노력하게 된다. 때때로 환자가 내 연구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나는 지금 내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살고 있다.”
   
   이동영·이건호 팀과 묵인희·김종원 팀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처리해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일은 이상웅 조선대 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맡고 있다. 조기진단 통합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은 공대 교수의 몫이다. 통합 솔루션에 데이터를 넣었을 때 치매에 걸릴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것을 예측해낸다.
   
   이종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수퍼컴퓨터로 뇌 영상을 분석하여 치매 조기진단에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뇌 영상 분석기술 전문가. 이종민 교수는 특정 분야를 책임지는 대신 전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종민 교수는 강연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전기화학 처리과정을 통해 정보를 상호교환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동영 교수는 “겉보기에는 정상인데 뇌 속에서는 이미 병이 시작되고 있는 사람을 조기에 진단하자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치매연구의 진전 속도는 무척 빠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 교수는 “조심스럽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치매 예방주사를 놓을 수 있는 데까지 진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