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명줄’ 바다를 구한 건 ‘산소 생산자’ 박테리아?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1> 생명의 기원
지구 표면의 70%는 바다로 덮여 있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있는 행성이다.
“내 이름은 큐리오시티. 자그마치 3조원짜리 화성 탐사 로봇이다. 2012년 8월 6일 오후 2시38분, 나는 화성의 ‘게일 크레이터’에 안착했다. 내 사명은 생명의 흔적을 찾는 것. 하다못해 물이라도 좋다. 화성 도착 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17개 카메라로 곳곳의 풍경을 찍어 지구에 송신했고, 처음 12개월간에만 화성 지각을 드릴로 7만5000번 뚫어 분석했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화성의 대기를 인간 대신 들이마시고 있다.
대기와 지각에서 생명의 필수 원소들을 대부분 발견했다는 데이터를 보내자 지구 우주생물학자들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보낸 사진 중에서 둥글게 마모된 자갈에 그들은 환호했다. 적어도 과거에는 물이 흘렀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실망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생명체는커녕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보나 같은 풍경이다. 흐르는 물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붉은 흙만 있을 뿐이다.”
지구에는 왜 바다가 있을까?
지구의 바닷물을 합하면 대략 이 정도에 불과하다.
금성과 화성의 바다는 사라졌다. 자외선이 수십억 년 동안 물을 쪼갰기 때문이다. 물을 쪼개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한다. 수소는 가벼워 중력을 떨치며 우주로 날아갔고, 무거운 산소는 바다와 암석에 들어있던 철에 결박돼 영원히 지각 안에 갇혔다. 그리하여 황폐한 지각은 붉은색이 됐고,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대기는 건조해졌다.
그런데 지구는 어째서 다를까? 수십억 년 동안 자외선을 쪼였는데도 어떻게 지구 표면의 70%는 여전히 바다일까? ‘지구에 바닷물이 얼마나 많은데 자외선 따위에 모두 사라질 수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의 물은 다 모아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지구 반지름은 6400㎞, 그런데 바다의 평균 깊이는 4㎞에 불과하다. 지구가 사과라면, 바다는 사과 껍질에 발린 붉은 색소라고 보면 된다. <위 오른쪽 그림)
금성과 화성이 불모의 땅이 되었다면, 그 사이에 놓인 지구도 불모의 땅이 되는 게 상식 같다. 그런 운명에서 지구를 구한 것은 무엇일까? 왜 지구에는 바다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생명체 잇따라 발견되는 海領 열수 분출구
지구와 화성의 차이 중 하나가 산소가 만들어지는 속도다. 풍화 작용과 화산 활동으로 새로운 암석이 표면에 노출되는 속도보다 산소가 생성되는 속도가 늦다면, 산소는 공기 중에 축적되지 않고 암석 속의 철과 결합해 지각을 산화시키는 데 소모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구 대기 중에 산소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암석과 광물이 표면에 노출되는 속도보다 산소의 생성 속도가 더 빨랐고 양도 많았음을 의미한다.
지구의 바다를 구한 건 박테리아였다. 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했다. 박테리아들은 햇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로부터 양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산물로 산소를 배출했다. 지구에는 물에서 쪼개져 나온 산소에 박테리아가 배출하는 산소가 더해졌기 때문에 암석과 바닷물 속에서 산소와 결합할 성분, 즉 철이 모자라게 되었고 그 결과 대기 중에 산소가 축적되었다. 공기 중에 산소가 있으면 바다는 손실되지 않는다. 자외선으로 쪼개진 수소들이 지구 중력 밖으로 달아나기 전에 다시 산소와 결합해 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에선 바다가 살아남았다. 물론 지구도 수소를 잃는다. 매년 30만t의 수소가 우주로 날아간다. 약 300만t의 물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45억 년이 지나면 지구 바다의 1%가 사라질 것이다. 인간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바다를 구한 박테리아는 어디서 왔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교과서에서 본 낡은 이론을 버려야 한다. 1920년대 영국의 홀데인과 러시아의 오파린이 제시한 이론들에 따르면 지구의 대기는 목성과 비슷해 메탄·암모니아·수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원시 수프가 형성됐고, 번개가 치자 그 에너지를 이용한 화학반응을 통해 생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생물학적으로 그럴 듯해 보였다. 1950년대엔 미국의 밀러와 유리가 실험으로 이를 구현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생명이 화학적으로 합성될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지 지구 생명이 대기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대기에서 생명의 기원을 찾았다. 이런 이론은 이제 잊자. 과학자, 특히 우주생물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큰 바다 속엔 주변의 분지보다 2500~3000m 높게 솟은 산맥이 있다. 이를 중앙 해령(海嶺)이라고 한다. 해령 가운데에는 ‘해저화산온천’으로 불리는 열수 분출구가 존재한다. 바닷물이 해저 지각의 틈새로 스며들었다가 마그마를 만나 펄펄 끓는 수증기가 되어 솟구쳐 오르는 곳이다. 유황 성분이 많아 강산성을 띤 액체 상태의 구리·금·아연 같은 중금속이 뒤섞여 분출된다. 주변의 온도는 섭씨 400도까지 올라간다. 빛도 산소도 없으며, 압력과 온도가 매우 높은 극한의 환경이지만 생명체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우주생물학자들은 바로 이 검은 연기 굴뚝에서 지구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중앙 해령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발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그중 단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구 생명체의 틀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조상 생물이 서로 다른 종류로 나뉘기 직전의 단계를 공통선조(the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LUCA)라고 한다.
LUCA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초 생명체의 모습을 그릴 때 생물학자들은 난감했다. 분자생물학에는 중심원리(Central Dogma)라는 게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이 1958년에 제안한 개념에 따르면 생명체 유전 정보는 ‘DNA→RNA→단백질’의 방향으로 흐른다. 그 원리에 따르면 단백질로 만들어진 정보는 다른 단백질이나 핵산으로 전달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생명 활동을 관장하는 단백질 효소를 만들려면 DNA나 RNA 같은 핵산이 필요한데 DNA→RNA 과정과 RNA→단백질 과정 역시 생명활동으로 단백질이 주관한다는 것이다. 말이 복잡한데 쉽게 말하면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먼저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핵산이 먼저인가, 단백질이 먼저인가?
딜레마는 1981년에 풀린다. 토머스 체크가 효소처럼 작용하는 RNA 분자를 발견한 것이다. RNA(riboneucleic acid)의 ‘ribo’와 효소(enzyme)의 ‘zyme’을 합성해 리보자임(ribozyme)이라고 불리는 분자다. 리보자임은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작은 RNA 조각이다. 그런데 생체 내에서 자기 자신에게 촉매로 작용한다. 즉 단백질처럼 효소작용을 하는 것이다.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핵산과 단백질 중 어느 게 먼저인가 하는 생명기원에 대한 물음은 리보자임의 발견으로 DNA보다는 훨씬 덜 중요하게 여겨졌던 RNA 기원설로 정리되었다. 토머스 체크는 이 공로로 1989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끊임없이 영향 주고받는 지구 생명과 환경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자들은 화성·목성·토성을 도는 위성의 두꺼운 얼음 밑 물 속에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역시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 그중에서도 인간이다. 우주생물학을 창시했고 1977년 보이저 1호 발사에 관여했던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태양계의 초상화를 찍기 원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약 60억 ㎞ 떨어진 명왕성 주변에 있을 때 보이저 1호의 카메라 방향을 틀어 지구 사진을 찍었다. 탐사선에 반사된 한 줄기의 햇빛에 놓인 지구를 보고 칼 세이건은 ‘창백하고 푸른 점(a blue pale dot)’이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저것은 고향이며 바로 우리입니다…우리의 행성은 광활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얼룩에 불과합니다. 어둠에서 우리를 구해줄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이 사진은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고향인 창백하고 푸른 점을 보전하고 소중히 여길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50억 년 전에는 태양이 생겼으며, 46억 년 전에는 부글부글 끓는 지구가 생겼다. 그리고 38억 년 전 마침내 바다가 생겼다. 다른 행성의 바다는 사라졌지만, 지구에는 바다가 남았다. 바로 생명 덕분이다.
지구의 생명들과 환경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현재의 지구와 지구 생명체의 모습을 만들었다. 대륙은 뭉쳤다 갈라서기를 반복했으며, 기온과 산소의 농도는 등락을 거듭했다. 이런 와중에 공룡 같은 거대한 생명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가 탄생했다. 자신의 근원과 미래를 묻는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 인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열려 있는지 이 지면을 통해 같이 이야기하자.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지구 첫 생명체는 35억년 전 호주 필바라서 탄생?
(중앙일보 2013.12.15 04:13)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2> 생명의 고향
1 시아노박테리아가 바다 부유물과 엉긴 후 암석화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곡괭이 오른쪽 부분).
2 샤크만의 카블라 포인트 인근 해안. 시아노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관찰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아무 때나 적용되는 건 아니다. 필자는 10여 년 전 독일 유학 시절 옆집 꼬마의 꿈이 절대로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꼬마의 꿈은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하늘을 나는 초록색 공룡’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꿈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불을 내뿜는 파충류, 물속에서 숨 쉬는 포유류,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는 정말로 없을까? 지구의 물리학적·생물학적 조건이 어떠했기에 지구의 동물들이 지금처럼 진화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생명에 미치는 지구의 조건을 추적하는 게 바로 자연사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자연사 연구를 위해 다양한 생물의 몸 설계의 기원, 즉 시간을 다루는 질문을 탐구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만약 진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진화를 처음부터 다시 작동시킨다면 지구 생명체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주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에선 우주에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기에 좋은 공간이 무수히 많다고 전제한다. 우주생물학자들의 생각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대학의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는 ‘조건이 같다면 같은 진화의 경로를 겪을 것이고, 지구와 비슷한 시간이 지났다면 지구에서와 비슷한 생명체들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롭고도 해로운 산소의 두 얼굴
3 바다에 녹아 있는 철이 산소와 반응해 침전되면 철광이 된다. 이때 산소가 풍부하지 못하면 띠무늬가 있는 호상 철광층이 형성된다.
생명의 역사를 추적할 때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산소’다. 왜냐하면 산소가 거의 없는 곳에서 살도록 몸이 설계된 동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산소가 있을 때 일어나는 물질대사는 산소가 없을 때보다 10배나 효율이 더 높다. 산소 없이 에너지를 얻는 ‘발효’라는 기막힌 방식도 있지만, 생명 구조가 복잡한 동물로선 발효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단순한 미생물은 에너지를 끌어낼 출처가 다양하지만, 몸집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선택권은 줄어든다. 복잡한 동물에게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방법은 산소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산소는 생물 체내에서 두 가지 필수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는 당(糖)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산소가 존재하면 포도당이 쪼개지고 여러 반응을 거쳐서 결국에는 ATP라는 생활에너지가 얻어진다. 산소 없이도 비슷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때 얻어지는 ATP 양은 훨씬 적다. 둘째는 생명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 효소의 부품 역할을 하는 것이다. 효소 외에 스테롤, 지방산, 혈색소 등 200여 가지 물질도 산소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산소가 적은 곳에서 적응한 일부 생명체가 있지만, 산소가 전혀 없는 곳에 사는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소는 생명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독(毒)이며 노화·죽음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철판에 산소가 결합하면 녹슨다. 멀쩡한 양초가 산소와 결합하면 불에 타서 사라진다. 세포도 마찬가지다. 반응성이 높은 형태의 산소 분자, 즉 활성산소는 세포의 생물 분자들을 손상시킨다. 물론 세포에는 방어 체계가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 활성산소에 의한 손상은 서서히 축적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고 몸은 점점 퇴화된다. 이는 노화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생명의 지속가능성은 산소가 주는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위협에 대처하면서 죽음을 맞기 전에 번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 이것은 우리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산소 환경에 적절히 적응해 온 생명체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후손이라면 무릇 선조를 찾아야 하는 법이다. 생명의 고향은 어디일까?
생명은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38억 년 전에 생겼다. 최소한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더 오래됐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왜냐하면 46억 년 전 지구 형성 후 39억 년 전까지는 소행성과 혜성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 형성 초기의 열에다 충돌로 발생한 열로 인해 물은 쉽게 증발돼 바다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38억 년 전인가, 35억 년 전인가
38억 년 전에는 생명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퇴적암은 그린란드 서부의 이수아 지층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지층의 생성 연대가 38억 년 전이다. 그리고 여기서 박테리아의 생체 활동 결과로 해석될 수 있는 흔적을 발견했다. 이 흔적이란 화석 같은 게 아니다. 탄소 동위원소의 함량비를 말한다. 동위원소란 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는 다른 원소를 말한다. 양성자 수와 중성자 수를 합한 수를 ‘질량 수’라고 한다. 양성자 수가 같으면 화학적 성질이 같다. 질량 수가 다르면 물리적 성질이 다르다. 즉, 동위원소란 화학적으로는 같은 원소이지만 물리적인 성질은 다른 원소를 말한다.
탄소에는 가벼운 동위원소 12C(양성자 6, 중성자 6)와 무거운 동위원소 13C(양성자 6, 중성자 7)가 있다. 탄소의 경우 가벼운 동위원소가 무거운 동위원소보다 100배쯤 더 많은 게 정상이다. 12C는 가볍기 때문에 반응성이 더 좋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명체에는 가벼운 12C가 정상보다 조금 더 많다. 그런데 이수아 퇴적암에는 12C가 정상보다 조금 더 많다. 이것은 이수아 지층이 형성될 무렵에 생명활동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간접 증거다. 이걸 바탕으로 생명의 역사가 38억 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사 연구자들은 탄소 동위원소의 간접증거 말고 직접적인 화석 증거를 원했다. 서호주 지질국의 마틴 반 크레넨동크 박사는 호주 서부 필바라 지역의 와라우나 층군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흔적을 찾았다. 여기에는 모종의 미생물 세포와 탄산칼슘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덩어리가 있는데, 형성 연대는 35억 년 전으로 판명되었다. 이 암석덩이는 ‘스트로마톨라이트’로 불렸다. 퀸즐랜드대학 연구진은 스트로마톨라이트 핵심부에서 채취한 표본을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한 끝에 ‘미생물의 흔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미생물의 정체는 시아노박테리아다. 아마도 필바라 지역은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곳일지도 모른다(사진 1-스트로마톨라이트).
지금도 필바라 지역의 얕은 바다 샤크베이에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낮에는 광합성을 하면서 물속의 부유물과 뭉치다, 수명을 다하면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성장시키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두 곳의 관찰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반인에게 공개된 해멀린 풀이며 다른 한 곳은 연구 목적으로 과학자들에게만 공개되는 카블라 포인트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우주생물학 탐사팀은 지난 9월 필바라 일대를 탐사할 때 카블라 포인트를 방문하여 스노클링을 하면서 살아있는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를 발생시키고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마치 35억 년 전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사진 2-카블라 포인트).
생명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탄소 동위원소에 따른 생명의 흔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약 38억 년 전에 시작됐고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35억 년의 것이다. 평균하여 약 36억5000만 년 전에는 생명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자.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지만 1000만 년으로 이것을 나누면 몫이 365가 된다. 즉 생명의 역사 1000만 년을 하루로 축소하면 딱 1년 365일짜리 달력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생명의 역사를 1년, 365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자.
1월 1일 0시에 운석이나 혜성을 타고 우주에서 왔든, 뜨거운 열수공에서 등장했든 어쨌든 간에 바다에 생명이 등장했다. 이 생명체는 느리게 진화하면서 보름을 보냈다. 1월 15일 시아노박테리아가 등장하여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를 조금씩 바다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4월까지 발생한 산소는 바다에 녹아 있거나 암석에서 노출된 철(Fe)을 산화시키는 데 소모되었다. 하지만 산소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것은 이때까지 적철광 같은 산화된 철 광물이 풍부한 퇴적층이 형성되지 않고, 대신 부분적으로만 산화된 여러 종류의 철로 이루어진 호상(縞狀) 철광층 계통이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사진 3-호상철광층). 그래서 4월까지는 대기에 산소가 거의 없었다.
5월이 되자 시아노박테리아의 산소 발생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여기서 우리는 왜 생명은 광합성이라는 장치를 발명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자외선으로 물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활성산소에 대응하려면 위협적인 활성산소로 산소 기체를 만들어 노폐물로 방출하는 장치가 필요해 광합성을 발명했을지도 모른다.
7월이 되자 유전자 정보를 핵막으로 둘러싸서 보호하는 진핵생물이 등장했고, 8월에는 다세포 생물이 나타났다. 다세포 생물은 광합성으로 산소 농도가 점점 높아지자 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떼를 지어 모인 세포들이 진화해서 생겼을 것이다. 8월까지의 진화는 지루하도록 늦었다. 생명이 생기고 24억 년이 지났지만 첫 번째 생명체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결과다.
9월이 되자 비로소 진화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침내 암컷과 수컷이라는 양성이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번식을 하려면 암·수컷의 유전자가 조합해야 했다. 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급속히 높아진 것이다. 10월 무렵엔 엄청난 종류의 생명체들이 바닷속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즉 지구에 생명이 등장한 지 30억 년이 지났을 때까지의 생명체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단단한 껍질이 없었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기 어렵고, 설사 화석으로 남았더라도 여전히 너무 작았기 때문에 우리가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 최초의 역사 30억 년은 지루한 시간이었다. 아직 삼엽충이나 암모나이트는 등장하지도 않았으니 불을 내뿜는 파충류, 물속에서 숨 쉬는 포유류,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없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알려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이 시간은 생명의 도약을 준비하는 험난한 시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생명의 빅뱅이라고 할 대사건을 일으킬 준비가 끝났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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