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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힐링푸드

육향 진한 평양냉면, 수원에서 맛보다 (조선일보 2013.08.09 09:00)

육향 진한 평양냉면, 수원에서 맛보다

[맛난 집 맛난 얘기] 육미옥

 

최근 메밀의 회귀현상이 두드러진다. 참살이 흐름을 타고 각종 기능성이 뛰어난 식재료인 메밀이 급격하게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메밀 막국수와 평양냉면을 취급하는 고깃집과 전문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건강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려는 외식업계의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서울 을지로 일대의 전통 평양냉면 아성에 도전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수준급 냉면을 장착하고 마니아를 공략하는 집들이 늘고 있다. 수원의 <육미옥>도 그런 곳이다. 향후 이들의 움직임이 활성화되면 서울 을지로 중심의 평양냉면 판도도 차츰 수도권으로 확대될 것이다.


	평양냉면

메밀, 지겹도록 먹어봤기에 누구보다 느낌 안다

이 집 주인장 우건제(52) 씨는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주변은 온통 메밀 밭이었다. 동구 밖에서 학교 가는 길까지 메밀 이랑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끼니 때면 감자, 옥수수와 함께 메밀을 지겹도록 먹었다. 메밀 부침개, 메밀 전, 메밀묵, 메밀 국수 등을 먹고 또 먹었다. 그러나 메밀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 먹었던 적은 더더구나 없다. 당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흰 쌀밥이었지만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성인이 된 뒤로는 아예 메밀로 만든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메밀은 화려하게 변신했다. 가난한 위장이나 채워주던 천덕꾸러기 곡식에서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는 수호신의 자리를 꿰찼다. 이젠 가격도 비싸졌고 메밀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대접도 달라졌다. 수십 년간 메밀을 등졌던 우씨 태도도 변했다.

메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그 느낌을 잘 아는 우씨, 차츰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턴가 지겨웠던 메밀 맛이 오히려 그리워졌다. 아무래도 메밀을 떠받드는 주변의 분위기 탓도 있었으리라. 오랫동안 끊었던 메밀의 향과 맛을 몇 해 전부터 다시 찾았다. 틈 나는 대로 유명 평양냉면집을 순례하면서 메밀과의 뒤늦은 해후를 즐겼다. 그러면서 차츰 욕심이 생겼다. 평양냉면을 만들고 싶어졌다. 최고의 평양냉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든 고깃집 주인의 로망이다. 맛있게 고기를 먹은 뒤 가장 완벽하게 뒷맛을 마무리해주는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기 때문이다.

한우로 진하게 육수 낸 육향 짙은 평양냉면 계열

수준급 평양냉면이 있는 고깃집과 그렇지 못한 고깃집은 격이 다르다. 수준 높은 평양냉면을 만들어내는 길이 너무 험하고 힘들어서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고깃집 주인들 사이엔 평양냉면 취급에 대한 유혹과 매력이 그만큼 강렬하다. 결국 우씨는 정통 스타일의 평양냉면(9000원)을 완성, 최근 성공적으로 메뉴에 올렸다.


	평양냉면 제조과정

육수는 한우로만 낸다. 한우 사골과 한우 등심을 비롯해 다른 한우 고기의 잔여육을 1:9의 비율로 가마솥에 넣고 9시간을 끓인다. 육수 내는 작업은 주인장 우씨가 직접 불 옆에 지켜 서서 관리한다. 이 때 가장 신경 쓰는 작업은 기름제거다. 팔이 아프도록 걷어내고 또 걷어내도 기름이 자꾸만 떠오른다고. 우씨에 따르면 좋은 냉면 육수 만들기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기름과의 한 판 싸움이라고 한다. 더구나 일반 스테인리스 국통이 아닌 무쇠 가마솥에서 기름 걷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육수는 살얼음이 살짝 낀 상태로 보관했다가 메밀 면에 부어 내간다.

메밀도 신경을 많이 썼다. 국내 최고의 평양냉면집으로 평가 받는 점포에 공급하는 제분소에서 동일한 메밀을 받아 쓴다고 한다. 면 반죽의 메밀 함량은 70% 내외다. 여름에는 약간 못 미치고 겨울에는 조금 더 넣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1.5되 정도 분량으로 그때그때 반죽해서 면을 뽑는다. 굵기는 1.5호 정도로 일반적인 평양냉면 굵기다. 미리 반죽해두면 여름철이어서 쉬 상하기도 하고, 메밀 향이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소량으로 자주 반죽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성 들여 만든 평양냉면 맛에 익숙지 않은 고객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처음 평양냉면을 접하는 고객은 이게 무슨 냉면이냐며 화를 낸다. 그럴 때마다 우씨는 평양냉면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애원한다. 입맛에 혹시 안 맞으시더라도 국물은 보약이니 제발 남기지 말고 다 드시라고.

고명으로는 오이채, 무절임, 지단, 실파, 배, 수육을 수북하게 올려놓았다. 특히 수육을 여섯 점 정도 얹어 푸짐한 느낌이 든다. 평양냉면을 주문하면 떡갈비를 서비스로 준다. 각종 채소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씩 넣어 만들었는데 마치 양평 옥천냉면의 완자 스타일과 비슷하다. 함께 내온 백김치도 개운하고 시원하다.


	육미옥 외관

이 집 평양냉면은 확실히 육수의 육향이 진하다. 이처럼 한우 고기로 육수를 내 육향이 진한 평양냉면 계열로는 <봉피양> <우래옥> <삼도갈비>가 있다. 먹을수록 슴슴한 듯하면서도 짙은 육향과 덤덤한 메밀 향이 이 국수의 정체가 평양냉면임을 드러낸다.
고기를 먹은 손님은 후식용 평양냉면(5000)이 적당하다. 배와 양파를 듬뿍 넣어 10일 이상 숙성시킨 양념장으로 비빈 비빔냉면(9000원)도 있다. 수원지역 평양냉면 마니아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의 끝자락, 집 근처에서 괜찮은 평양냉면 그 짙은 육향의 여운을 느낄 수 있으니…
<육미옥>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504-4  전화: 031-255-8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