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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화보 (연합뉴스 2009.06.23)

6.25 특집 화보

<6.25 특집 화보> 폐허속에 문 연 구두수선점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2009. 6.23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6.25 특집 화보> 홍릉에서 예배보는 미군들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예배를 올리는 모습. 1951.3.18.

<6.25 특집 화보> 홍릉 둘러보는 미군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들이 석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2009. 6.23

<6.25 특집 화보> 미군, 소년에 대한 경례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1951.3.21.

<6.25 특집 화보>텅빈 서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피난을 떠난 서울의 텅 빈 상가를 한국군 1명이 걸어가는 모습. 1950.12.26.
2009. 6.23

<6.25 특집 화보>배급행렬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1951.3.19. 서울.

<6.25 특집 화보>탱크 옆 빨래하는 아낙네들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6.25 특집 화보> 전장의 모정

한 어머니가 서울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뢰 파편에 다쳐 우는 아들을 데리고 미군을 뒤따라가 가고 있다. 1951.2.4.

<6.25 특집 화보>피난민 속 우는 아이들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얼어붙은 한강을 앞에두고 피난민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고 있다.

<6.25 특집 화보> 식사하는 고아원 원생들

1950년 11월 22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원생들이 함께 식사하는 광경.

<6.25 특집 화보> 서울의 한 고아원

1950년 11월 서울의 고아원에서 보모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광경.

<6.25 특집 화보> 한국군 유재흥 소장

한국군의 유재흥 소장. 1951. 1.22일 촬영. 한국전 당시 육군참모차장을 지냈으며 71∼73년 국방장관을 지냈다.

<6.25 특집 화보> 북한주민 검문하는 미 헌병

1950년 12월 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주민 가족을 미군 헌병이 검문하고 있다.

<6.25 특집 화보> 전쟁의 상흔, 수원성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 1951.1.25.

<6.25 특집 화보> 전장 순시하는 맥아더 사령관

1950년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 사령관. 가운데 인물은 리지웨이 사령관.

<6.25 특집 화보> 한국화폐 원판을 든 미군

1950년 11월 9일. 미 보병 2사단이 발견한 한국 화폐 원판을 한 미군이 들고 있다. 뒤에는 지폐다발이 보인다. 사진에 뒷면의 설명에는 이 원판과 지폐가 진본인지 위조된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6.25 특집 화보>미군의 대피 요청에도 무심한 주민들

1951년 1월 31일 미 보병 25사단 소속의 한 장교가 이동수라는 이름의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육군 소장, 김백일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1950. 12. 19. 묵호진.

<6.25 특집 화보> 전선으로 떠나는 국군 신병들

국군 신병들이 열차편으로 전선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비장하면서도 애띤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50. 12.18. 대구역앞.

<6.25 특집 화보> 전장의 이별 , 아들과 어머니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6.25 특집 화보> 폐허속 부녀자들

폐허로 변한 서울 거리에서 부녀자들이 건물잔해속에서 땔감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뒤편으로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0. 11.1일 서울모습.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6.25 특집 화보>1.4후퇴 피난민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피난민들. 2009. 6.23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 태극기 파는 사람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 편집자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eves)에서 6.25 관련 희귀사진인 흑백사진 47점을 발굴했다. 이번 공개된 사진은 폐허속의 구두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 한국전 당시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장군, 기록영화 촬영중인 홍성기 감독,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여군포로, 사찰에서 예배보는 미군 등으로 한국전쟁의 생활상과 참상을 엿볼 수 있다.>

<6.25 특집 화보>포즈 취한 피난민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2009. 6.23

<6.25 특집 화보>1.4 후퇴 피난행렬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