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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보다 앞선 세계 最古 금속활자 발견`(연합뉴스 )

"직지보다 앞선 세계 最古 금속활자 발견"(종합)
직지보다 빠른 세계 最古 금속활자 발견
(서울=연합뉴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을 앞서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 실물이 공개됐다.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서울 인사동 고미술 컬렉션인 다보성고미술이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2점이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보다 훨씬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임을 확인했다고 1일 말했다. 2010.9.1

남권희 교수, 13세기초 '증도가자' 발굴 주장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서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 실물이 공개됐다.

이 금속활자가 세계 최고로 공인되면 국사교과서 관련 기술은 물론이고 세계 인쇄술의 역사 또한 바뀌게 된다.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미술 컬렉션인 다보성고미술이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2점이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보다 훨씬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가칭)임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2일 실물 공개를 하루 앞두고 다보성미술관이 이날 공개한 남 교수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이들 금속활자 12점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품으로, 고려 고종 26년(1239) 목판본으로 복각(카피)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 758호. 이하 증도가)의 글자체와 완전히 일치한다.

남 교수가 주장한 고려시대 금속활자 12글자는 ▲明 ▲所 ▲於 ▲菩 ▲善 ▲平 ▲方 ▲法 ▲我 ▲福 ▲不 ▲子 자다.

1239년 간행된 목판본 증도가에 붙은 당시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이(崔怡)의 발문에 의하면 그 이전에 고려에서 주자본(鑄子本.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증도가가 있었지만 더이상 전해지지 않아 최이 자신이 각공(刻工)들에게 이를 목판본으로 복각케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국내 서지학계에서 1239년 목판본 증도가가 나오기 전 이미 금속활자본 증도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남 교수는 이번에 발굴한 금속활자 12글자가 글자체 특성으로 볼 때 복각본 목판 인쇄물 증도가가 나오기 전에 있었다는 금속활자본 증도가를 찍어낼 때 사용한 활자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이를 밝혀내는 데 3~4년간을 쏟았다면서 이 금속활자가 증도가를 인쇄하는 데 사용했다고 해서 '증도가자'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남 교수는 이 증도가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으로 알려진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금속활자로서 세계 기록문화 역사를 새로 쓸 세계적인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은 구한말에 유출되어 지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직지(1377년)가 꼽히지만 그것을 찍어낼 때 사용한 소위 흥덕사자(興德寺子)라는 금속활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고려 무신정권기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고종 21년(1234)에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라는 역대 시가집을 펴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문집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보성미술관 측은 남 교수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한 '증도가자'의 제조 시기를 밝혀내기 위해 보존과학자들에게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등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금속활자가 세계 최고로 공인받기 위해서는 국내외 관련 학계의 교차 검증과 비판을 거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다보성미술관 측도 "우리로서는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이런 결론을 내렸을 뿐"이라며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이들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증도가字, '직지'보다 앞선 근거는>
목판본 '증도가' 권말에 '존재' 기록..글자 모양도 일치


1일 발표된 금속활자 12점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정말 138년 이상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까.

한국서지학회장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문헌 기록을 검토하고 이 금속활자들과 목판 인쇄본의 글자 모양을 비교할 때 그렇다고 확신한다.

남 교수는 무엇보다 고려 고종 26년(1239)에 목판본으로 찍어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758호)를 주목한다.

이 '증도가' 끝 부분에는 '이 책의 원본은 남명선사가 문종 30년(1076)에 주자(鑄字. 금속활자)로 편찬했지만 더 전해지지 않아 목판으로 복각해 찍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12점이 이 금속활자본 '중도가'를 찍는 데 쓰였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그가 활자의 이름을 '증도가자(證道歌字)'라고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남 교수는 이 '증도가자'를 목판본 '증도가'와 비교해볼 때 글자 모양이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에 발견된 명(明)ㆍ소(所)ㆍ어(於)ㆍ보(菩)ㆍ선(善)ㆍ평(平)ㆍ방(方)ㆍ법(法)ㆍ아(我)ㆍ복(福)ㆍ불(不)ㆍ자(子) 등 12자를 목판본 '증도가'에서 찾아보면 같은 모양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특히 '명(明)' 자는 지금의 글자와는 다른 옛 글씨(古字)로 쓰였는데 육안으로 보면 그 모습도 일치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보통 한번 나온 책을 목판본으로 다시 제작하는 '번각본(飜刻本)'은 기존의 책을 뜯어 각 페이지(葉)를 목판에 붙인 다음, 그 글씨를 그대로 새기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글씨체까지도 원본과 대부분 일치한다.

남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현전하는 목판본 '증도가'는 '증도가자'로 찍은 금속활자본 책을 뜯어내 목판에 새긴 판본이 된다.

남 교수는 이 '증도가자'가 13세기께 주조 및 사용된 것이며 밀랍 주조 방식을 택한 '직지심체요절'의 흥덕사자(興德寺字)와 달리 주물사 주조방식을 택해 만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또 '직지'를 찍은 활자인 흥덕사자가 지방에서 만든 활자인 반면, 증도가자는 중앙에서 주조ㆍ사용된 것이므로 고려시대의 주조기술과 조판 및 인쇄술을 조선시대와 비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흥덕사자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에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지금까지 실물로 남아있는 것은 개성에서 발견된 '복(복<山+復>)' 자와 '전(顚)' 자 2점 뿐이다.

'복' 자는 일본인이 소장하다가 1913년 덕수궁박물관에 넘긴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전' 자는 현재 북한 개성역사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이 금속활자가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공인되면 세계 인쇄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큰 발견이지만 그에 이르기까지는 학계의 교차 연구ㆍ검증, 관련 논문의 증명이라는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다.

<증도가字 세계 '最古' 금속활자 공인되면>
"세계사적 사건"..직지 위상 흔들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가칭)가 발견됐다는 서지학자 남권희 경북대 교수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거나 적어도 학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사건'이다.

언론계에서 흔히 쓰는 '국사교과서가 바뀐다'는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장은 단순히 특정한 학자 한 사람의 의견 개진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히 넘기기에는 우선 그것을 주장한 연구자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 일부 비판적 시각이 없지는 않지만, 남 교수는 서지학 분야 중진 중에서 현재 가장 권위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만약 그의 주장이 타당성을 얻는다면 정말 국사교과서가 바뀐다. 당장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잃게 된다.

물론 직지는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기에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공인된다고 해도 여전히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이다.

하지만 책을 찍어내던 금속활자 자체가 발견됐다고 하면 이런 금속활자보다 138년 이상이나 흐른 뒤에 그와 같은 금속활자로 찍어낸 인쇄물이 예전과 같은 위광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대대적인 직지 활자 찾기 활동을 벌이는 청주고인쇄박물관만 해도 김이 빠질 수 밖에 없다.

1일 남 교수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직지를 심벌로 내세우는 청주에서 "남 교수 주장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건가? 진짜 증도가를 만드는 데 찍었다는 금속활자가 맞다면 우리 직지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 교수가 주장하는 '증도가자'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실제 직지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증도가자가 됐건 직지가 됐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이 점은 오히려 한층 더 강화된다.

직지만 해도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42행 성경'을 금속활자로 찍어내기보다 무려 78년을 앞선 1377년에 나왔다.

물론 세계 문명 발달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역사가 훨씬 오래된 우리의 활자는 구텐베르크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는 그야말로 세계 문명의 흐름을 뒤바꿨지만 우리의 금속활자는 국내, 혹은 동아시아에 국한된 측면이 있다.

이는 실제 서구 중심 역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세계사의 주축으로 놓으면 이 지역 문명이 세계의 주류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금속활자 발명은 분명히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남 교수 주장이 타당하다면 세계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우리 선조가 세운 셈이 된다.
"직지前 금속활자"에 청주시 신중.곤혹 교차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을 앞서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 실물이 공개되자 그동안 직지를 지역의 상징으로 삼아왔던 청주시는 연구결과를 차분히 지켜보자며 곤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청주 고인쇄박물관 황정하 학예연구실장은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 보다 훨씬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임을 확인했다는 주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황 실장은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현재 존재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이라며 "이는 현재 세계에는 어느 곳에서도 직지 이전에 금속활자로 발간된 인쇄물이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과 중앙박물관에도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가 있기 때문에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보다 이전에 만든 금속활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그동안 학계에서도 인정해 온 것"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금속활자본이 아니고 활자여서 직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황 실장은 "그러나 직지보다 이전에 제작된 금속활자로 인쇄물을 발간했다는 근거가 없었던 만큼 남 교수의 이번 발표는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기술의 우수성을 재확인해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동안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인정을 받았던 직지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특히 청주시는 '2010 청주 직지축제' 개막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다소 곤혹스뤄하고 있다.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만일 직지보다 더 빠른 금속활자본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동안 청주시가 추진해왔던 직지 관련 사업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며 "모레부터 직지축제를 개최해야 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이 같은 발표가 나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된 직지를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하는 등 직지세계화와 함께 직지를 지역 대표브랜드로 키워왔다.

한편,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미술 컬렉션인 다보성고미술이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2점이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보다 훨씬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가칭)임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