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바로알기

한치 앞도 안 보이는데 목재 올리려고 호흡기까지 뗀다 (조선닷컴 2010.10.02 14:28)

한치 앞도 안 보이는데… 목재 올리려고 호흡기까지 뗀다

800년 전 침몰한 '마도2호' 발굴 현장 들어가보니

'고려시대, 조선시대 조공을 바치러 가던 배들이 빠져 있다. 이것만 건지면 부자가 된다. 투자하라'는 식의 보물선 사기는 아직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러나 바닷속에서 돈이 아니라 문화를 건져 올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수중문화재발굴단원들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충남 태안 마도 부근에서 지난 2008년부터 10년 계획으로 대규모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고려시대에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작업이 한창인 마도 수중문화재 발굴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지난 9월 13일 오전 10시 충남 태안군 마도에서 500m 떨어진 해상(海上). 마도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5분쯤 달려 도착한 망망대해 위 바지선(100㎡) 위에서는 민간 잠수사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 17명의 수중문화재발굴단원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12세기 말~13세기 초에 침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선박을 수중에서 해체해 인양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선체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중에서 해체한 후 물 밖에서 다시 조립하는 방법을 쓴다.

지난달 13일 충남 태안 군 마도 앞바다 수중문 화재 발굴 현장으로 본 지 석남준 기자가 뛰어 들고 있다. 국립해양문 화재연구소 양순석 학 예사(큰 사진 왼쪽)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다. 물속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작은 사진)였지만, 발굴 단원들의 몸놀림 은 재빨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물속에 들어가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제 손을 놓치지 않게 주의하세요." 오전 11시, 수중 발굴 베테랑인 양순석(38) 학예연구사가 당부를 했다. 서해는 잠수사들에게 다이빙하기에 최악의 입지다. 갯벌이 많아 시계(視界)는 흐리고 조류는 무척이나 빠르기 때문이다. 잠수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 10kg의 납벨트를 허리에 찼다. 오리발까지 신자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바지선 위에 연결돼 잠수사들에게 생명줄 역할을 하는 호흡기를 입에 물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 들어가자 양 연구사의 걱정이 공연한 것이 아니었음이 입증됐다. 물속에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한 손은 양 연구사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지선과 고려시대에 침몰한 배 사이에 연결된 밧줄을 단단히 잡았다. 수심 8m 지점에 다다르자 눈앞에 침몰한 배의 모습이 보였다. 일부만 겉으로 드러났을 뿐 선체 대부분은 여전히 갯벌 속에 파묻혀 있다. 선체 위에는 불가사리가 터를 잡고 있었다. 선체의 규모는 제법 컸다. 양 연구사는 "인근 지명을 따는 관행에 따라 이 배에 '마도 2호'라는 명칭을 붙였다"며 "선체의 크기는 길이 11.8m·너비 5m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 5월부터 마도 2호를 발굴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곳에서 보물급 청자매병 2점을 비롯해 도자기 74점, 목간·죽찰 31점, 각종 죽제품과 청동제품 등 450여 점을 인양했다. 청자매병이 수중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현장을 찾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성낙준 소장은 "마도 2호는 지금의 전북 고창에서 출발해 수도 개경으로 운항 중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다양한 물품이 실렸던 것으로 밝혀져 연구자들에게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고 말했다.

점심은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허벌나게 고생들 했소잉. 맛있게 드쇼." 25년의 잠수 경력을 자랑하는 신승구(44)씨가 걸쭉한 사투리를 내뱉자 바지선 위는 웃음바다가 됐다. 식사를 마친 발굴단원들은 각자 자투리잠을 청했다. 그들은 오전 작업으로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땡땡땡땡~."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발굴단원들이 오후작업에 돌입했다.

잠수사 신씨와 잠수 경력 30년의 강대흔(52)씨가 장비를 착용했다. 잠수사들이 쓰는 헬멧에는 작업 상황을 촬영하는 카메라, 바지선 위와 교신할 수 있는 마이크 그리고 흐릿한 시야를 보완하는 조명이 장착돼 있다. 장비 착용을 마치고 물속으로 뛰어든 신씨와 강씨가 30㎝ 정도 되는 톱을 이용해 마도 2호를 해체했다. 갯벌이 일어나며 시야가 흐릿해지자 신씨가 진공청소기와 비슷한 슬러지 펌프(Sludge pump)를 이용해 뻘을 빨아들였다. '쓱싹쓱싹' 톱질을 계속하자 나무못으로 연결된 선체의 일부가 해체됐다. 입수(入水)한 지 30분이나 됐을까. "한 명 더 내려보내 주쇼.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안 되겠어." 신씨가 마이크를 통해 바지선 위로 연락을 취했다. 또 다른 잠수사가 긴급히 물속으로 들어왔다. 세 명의 잠수사는 물고 있던 호흡기를 떼고 공기주머니에 공기를 주입했다. 해체한 선박에 공기주머니를 매달자 곧 마도 2호의 밑바닥 중앙을 통과하는 길이 9m·폭 50㎝의 목재가 물 위로 떠올랐다. 무게는 2t에 달했다.

인양된 목재는 800년 동안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나뭇결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표면이 깨끗했다. 신씨는 "갯벌이 반 진공 상태를 유지시켜 800년의 세월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지선 위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바지선 옆에 있던 인양선 크레인으로 목재를 바지선 위로 끌어올리고 목재의 건조를 막기 위해 즉각 부직포와 비닐을 이용해 3중으로 감쌌다. 지상으로 올라온 목재가 공기와 닿으면서 급격히 산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흐릿한 시야와 빠른 조류로 물속은 작업하기 최악의 환경이지만 잠수사들의 몸놀림은 물 위와 다르지 않았다. 특수부대(HID)에서 잠수를 시작한 신씨는 "잠수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선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무턱대고 작업에 나섰다가는 수백 년 된 유물이 일순간에 손상된다"고 말했다.

마도 앞바다는 봄철 안개가 짙게 끼고 조류가 센 지역. 고려시대에는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목이라는 뜻의 난행량이라고 불렸다. 인근 해역에서는 선박의 닻을 받치는 데 쓰는 닻돌 50여개가 발견됐다. 침몰한 선박이 수십 척에 이른다는 의미다. 양 연구사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지역에서 세곡선의 20%가 침몰했다는 기록도 나온다"고 했다.

지난 9월 초 발굴단에 큰 위기가 닥쳤다. 7호 태풍 곤파스가 발굴 현장이 위치한 태안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것이다. 태풍이 오기 직전 발굴단원들은 긴급히 짐을 쌓았다.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바지선을 해체해 항구로 이동하고, 발굴 중인 마도 2호선이 태풍에 휩쓸리지 않도록 물속에 들어가 모래주머니로 선체를 덮는 작업을 했다. "태풍이 불어닥친 기간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머릿속에는 어렵게 발굴하고 있는 마도 2호가 흩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죠." 양 연구사는 "그래도 발굴 현장이 무사해 다행"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작업을 종료한 오후 4시 30분까지 잠수사들은 마도 2호의 선체 밑바닥 부분 목재 8개를 건져 올렸다. 마도 2호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이 더 걸린다. 부재를 민물에 담가 소금기와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2년이 걸리고, 이어 약품을 이용해 선체를 단단하게 굳히는 데 5~6년이 걸린다. 이후에도 1~2년 정도 건조하고 조립한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배의 모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