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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군산 기행 두 번째- 크고 높은 집, 히로쓰 저택 (경향블로그 2011/02/13 18:10)

1925년에 지어진 히로쓰 저택. 내로라하는 규모의 일본식 저택입니다.


히로쓰 저택의 덧복도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이성당 빵집 앞으로 가볼까요? 이 집 빵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운영하던 빵집을 광복 후 이성당 주인장이 인수하여 빵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1945년이니 이성당의 빵은 자그마치 65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습니다. 군산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아온 근대문화유산이라면 바로 이성당의
단팥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당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빵 봉지를 챙기세요. 허기지고 힘들면 즐거운 답사가 될 리 만무하니까요.


빵집 주변 동네를 걸어갑니다. 이곳 신흥동 일대는 옛 일본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타짜>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로 유명한 히로쓰 저택을 비롯해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예사롭지 않은 주택들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정원수로 가려져 있어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운 집들도 있지만 집합주택의 형태를 가진 집들도 꽤 있습니다. 창문 장식, 지붕 모양이 독특합니다. 히로쓰 저택은 1925년경에 지어졌습니다. 집주인의 이름이 히로쓰입니다.

신흥동은 일제강점기에도 신흥정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처음부터 시가지로 개발된 것은 아니고 군산중심지가 점점 커지면서 월명산 아랫쪽인 신흥동까지 시가지에 편입되어 크게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변두리 지역이라고 해서 낙후된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지요. 1934년의 군산시 지도에 보면 히로쓰 가옥이 있는 신흥동 일대는 널찍한 터에 큰 저택들이 뚜렷하게 세워져 있었으니까요. 히로쓰 저택이 있는 길은 천대전정 1정목이라는 지번이 붙어있는데, 그 남쪽에는 군산부윤(군산시장 정도의 위치입니다.) 관사를 비롯해서 군산의 파워 인물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군산부윤 관사는 현재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34년에 작성된 군산시가지도. 빨간색 표시가 히로쓰 저택입니다. (구 히로쓰 가옥 기록화보고서에서 재촬영)

히로쓰 저택은 근대건축답사를 시작한지 2년이 꼬박 지난 후에야 비로소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복원 보수 공사 때문에 계속 문이 닫혀있었기 때문이지요. 2010년 겨울에 공사를 끝내고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질척한 눈길을 걸어서 겨우 히로쓰 저택 앞에 당도했습니다. 이곳을 찾은 게 이번이 몇 번째인지. 이제야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쿵쾅거리는 가슴도 그냥 내버려 두렵니다.







바깥에서 봐도 저택의 규모는 무척 거대합니다
. 높은 담과거대한 향나무들로1층 부분은 거의 다 가려져 있지만 시커멓게 솟은 2층 경사 지붕이 만만찮아 보입니다. 주변의 집들과 비교해보아도 월등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히로쓰 요시사브로(廣津吉三郞 ,혹은 히로쓰 게이사브로라고도 불립니다. 어떤 이름이 맞는 것인지 정확히 아시는 분 계신가요?)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렇게 큰 저택을 지었던 것일까요?



그의 행적은 미묘한 데가 있습니다
. 히로쓰는 포목상이었습니다. 군산이나 전북 지역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일본인들은 전북의 평야를 거느리며 거대한 농장을 일궜던 인물들이 많은데, 히로쓰는 상업으로 부를 이룬 인물이라는 게 특이한 사항입니다. 그는 군산부의 협의회위원을 지냈고 군산 지역의 선물거래시장이었던 미곡취인소(미두취인소)와 군산의 유명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에도 관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히로쓰 저택을 좀더 잘 살펴보기 위해 지도를 실어보았습니다. 배치도 한번 보시죠. 본채, 객실, 별동 창고로 크게 구성되어 있씁니다.




히로쓰에 대한 궁금함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 우선 외부를 살펴보았습니다. 한눈에도 일본식 가옥임을 느끼게 하는 목조가옥이 펼쳐집니다. 건물은 ㅡ, , , ㅁ 자 형 등 우리 전통 가옥의 형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우선 2층짜리 목구조 건물이 ㅡ자형으로 자리잡고 있고 가옥의 끝부분에 비스듬한 각으로 공간을 덧붙였습니다. 또 건물 뒷부분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2층 높이의 창고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 내부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부채꼴 모양처럼 건물의 현관 부분은 좁고 건물의 뒷부분은 넓게 펴지는 구조입니다. 오른쪽 측면에는 부엌이 있는데, 굴뚝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부엌은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세 칸짜리 헛간(창고)과 마주 보고 있습니다.



객실부분. 편복도 안쪽으로 두 개의 방이 보입니다.





비늘판벽으로 마감된 객실 너머로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은 창고(금고)가 보입니다.



부엌은 많이 개조한 흔적이 보이지요. 굴뚝도 있고요.




좌측면은 일본식 정원이 펼쳐져 전망이 가장 좋아요.




이 건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왼쪽 측면입니다
. 유리문이 촘촘히 닫혀있는 편복도를 따라 손님방과 안방이 있고 유리문을 통해서 일본식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습니다. 눈이 쌓이고 물길이 사라져정확하게 그 느낌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향나무, 동박, 소나무, 목련 등 풍성해보이는 정원수와 물길을 건너갈 수 있는 돌다리, 석등 장식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일본식 정원을 쓰키야마((築山)라고 부릅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띠고 있는데 목재가 오래되어 자연스럽게 흑빛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비와 바람, 눈와 얼음에 단단하게 여며진 나무의 질감이 이질적이면서도 강해 보인다고 느꼈습니다. 물고기 비늘처럼 겹쳐진 나무판을 외부에 댔다고 해서 비늘판벽 마감이라고 합니다.

건물의 4면이 모두 다른 느낌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것은 내부 구조와 방의 기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현관쪽에서 보면 뒷부분의 창고는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집의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은밀한 공간 구성이 이 저택을 신비롭게 보이게 만드는 특별한 점이겠지요. 중복도와 편복도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꺾여서 실제 공간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미로처럼 복잡하다고 느끼게 되고,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공간이 확장되는데 이런 점이 아마 일본식 주택에서 느끼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층 평면도를 살펴볼까요? 도면은 건물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요.



편복도에 서면 오른쪽에 주요 방들이 있고 왼쪽에 정원이 보입니다,




방4의 내부 모습입니다. 옷과 침구를 넣어두던 오시레가 있지요.




내부는 크고 무척 추웠습니다
. 사람이 살지 않은 집, 사람의 온기를 잃는 집은 왜이리 안타깝게 다가올까요? 현관 쪽마루로 올라서면 중앙의 방을 중심으로 햇살이 살포시 들어오는 왼쪽 복도와 어두컴컴한 오른쪽 복도가 나타납니다. 우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마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이 바닥은 처음 집을 만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던 것이라고 합니다. 노쇠한 집이 내는 숨소리처럼 안쓰럽기도 했지만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을 슬쩍 내려다 보며 옛날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드나들었을 이 집의 화려한 과거사를 상상해보았습니다.

편복도를 따라 긴 방이 있습니다
. 넓은 방(4)는 원래 두 개의 방이었는데, 벽을 허물고 하나의 방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엉뚱한 구조변경으로 벽이 무너지는 등 문제가 생겼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손을 보았지만 큰 방은 썰렁해보이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 안에는 오시레 같은 내부 붙박이 장을 빼고는 남아있는 물건이나 흔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마치 지우개툴로 싹싹 지우듯 없애버린 방안을 망연히 들여다 봅니다.



정원에서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본 객실 부분.



방1의 내부 모습. 붙박이 장식장인 도꼬노마가 남아있습니다.



방안의 창문을 열면 복도가 나오고 복도의 유리창 너머로 바깥을 구경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겹겹의 레이어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지요.



엇각으로 비스듬히 놓여있는 객실 부분의 두 개의 방
(1, 2)도 구경합니다. 이곳은 도꼬노마라 불리는 붙박이 장이 있습니다. 옷이나 침장을 넣어두는 미닫이 문이 달린 붙박이 장을 오시레라고 하고, 장식품을 올려둘 용도로 만든 선반장을 도꼬노마라고 합니다. 도꼬노마는 신을 모시는 제단의 기능도 있었지요. 일본식 주택에서 흔히 보이는 장식장입니다. 이방에는(1) 다다미가 깔려있습니다. 도톰한 볏짚 같은 다다미를 살짝 밟아봅니다. 알고 보니 원래 쓰던 다다미는 썩어서 교체한 지 오래되었고 이 다다미는 영화 <타짜>를 촬영하면서 영화 세트장을 만들기 위한 소품이었다고 합니다. 창문을 열면 편복도가 보이고 편복도의 유리창너머로 바깥을 감상하는 방입니다. 겹쳐진 공간, 겹쳐진 시선. 그 수많은 레이어들이 만드는 비효율적이고 불편하지만 미묘한분위기에 젖어봅니다.



2층의 구성을 볼까요? 방8은 콘크리트 창고의 윗층부분. 방9와 10에서 앞뒤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나무계단의 부드러움이 기분좋습니다. 유리창쪽에 나무로 예쁘게 핸드레일도 만들었네요.




방 10의 내부. 붙박이 옷장이 남아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봅니다. 2층 복도에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쬡니다. 1층의 방보다 2층의 방이 훨씬 환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얼마 전까지 살았다가 황망히 이사를 가버린 집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 이런 집에 온 적이 있었는데 과연 그곳이 어디였을까, 생각하느라 복도를 자꾸 왔다갔다 합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건물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잘 보입니다.


뒷부분의 창고는 콘트리트로 육중하게 지어진 것이나 작은 창문을 내고 지붕의 모양 등 건물의 모습만 봐도 군산, 인천, 부산 등지의 창고나 문서고와 똑 같은 모양새를 지녔습니다. 귀중품이나 중요한 문서들을 보관해두던 금고였겠지요. 이곳은 나중에 식당으로 쓰게 되면서 손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히로쓰 저택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 중에 규모가 상당히 큰 축에 속합니다. 또한 정통 일본식 주택의 특성을 비롯해서, 굴뚝, 온돌, 부엌의 위치 등 우리나라의 전통의 공간 방식을 받아들여 절충형으로 형성한 점도 특징입니다.

건물은 광복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었고 전 호남제분의 설립자인 이용구 씨가 건물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의 아들이 물려받았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어린 딸에게 건물의 소유가 넘어갔는데, 지금은 문화재청과 군산시가 건물을 매입 관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관리해온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첫 소유주인 이 사장은 이 건물과 함께 오래된 목조가옥을 하나 더 매입했다고 합니다. 히로쓰 저택을 복원 보수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목조가옥에서 재료를 조달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애정을 갖고 돌보았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물이 남아있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 건물이 남아있기 때문에 수많은 조각들을 하나씩 꿰매서 조각보 같은 역사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요?


2층 복도에서 내려다본 저택의 모습. 이 뷰가 참 맘에 드는군요.




하지만 누군가 이 방에 따뜻한 불을 피우고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고 좋은 물건들을 두어 건물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건물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큰 욕조와 대형 TV가 있고 바비큐를 굽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근처 펜션으로 가시고, 조금 불편하고 조금 어색해도 옛 집에서 옛날 방식을 경험하는 일에 더욱 열광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운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좋은 건물이 춥고 스산한 곳으로 남아있다가 결국 박제된 공간이 될까 그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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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히로쓰 가옥

군산시 신흥동 58-2번지

등록문화재 제 183

** 문화재청에서 펴낸 <히로쓰 가옥 기록화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기록화보고서는 문화재청 웹사이트에 공개된 경우도 있고
국립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데,
문화재 건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입니다.

도면은 기록화보고서에서 재촬영한 것임을 밝혀둡니다.